[사설] 미 의회 ‘북한인권법’ 재승인에 거는 기대
미국 상원에서 ‘북한인권법’ 재승인을 위한 법안이 재 발의됐다. 2022년 만료된 지 3년 만이다. 3년 전 당시 상원의원이던 마코 루비오 현 국무장관이 법안 발의를 주도했으나 상원 가결 실패로 답보 상태였던 북한인권법안의 재승인 여부가 주목되는 이유다.
미국 상원에서 ‘북한인권법’ 재승인을 위한 법안이 재 발의됐다. 2022년 만료된 지 3년 만이다. 3년 전 당시 상원의원이던 마코 루비오 현 국무장관이 법안 발의를 주도했으나 상원 가결 실패로 답보 상태였던 북한인권법안의 재승인 여부가 주목되는 이유다.
헤브론에서 자기가 왕이라고 선포한 압살롬이 쿠데타 세력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한다(16:15). 성경은 이때 ‘아히도벨도 그와 함께 이르렀다’고 그의 이름을 특별 거명했다. 아히도벨이 헤브론의 반란을 주도한 인물이고, 다윗이 가장 경계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에 입성해서 압살롬이 취할 행동을 제시하는 사람, 그의 지략이 얼마나 뛰어난지 성경이 “그 때에 아히도벨이 베푸는 계략은 사람이 하나님께 물어서 받은 말씀과 같은 것이라”고 말할 정도였다(16:23절).
교계에 지대한 관심을 모았던 예장 합동 교단의 ‘여성 강도사’ 제도가 끝내 물거품이 됐다. 지난 14일 개막된 합동 제111회 총회에서 헌법 개정안 노회 수의 결과를 발표했는데 가결에 필요한 수를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 예장 합동 측이 ‘여성 강도권’ 인허를 결의한 건 지난 2024년 제109회 총회에서다. 곧바로 이듬해 제110회 총회에서 관련 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개정안은 ‘목사후보생’을 ‘목회자후보생’으로 바꾸고, 목사의 자격을 ‘남자’로 한정
예장 고신총회가 부산 세계로교회 손현보 목사의 설교에 대한 고려신학대학원 교수회 보고서를 참고자료로 남기기로 결의했다. 손 목사의 설교에 대해 교단의 신앙고백과 충돌한다고 한 교수회의 연구보고서를 총회의 공식 입장으로 채택하지 않은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행하신 수많은 기적 가운데 치유의 기적은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한다. 소경이 눈을 뜨고, 걷지 못하던 사람이 일어나 걸으며, 오랫동안 병으로 고통받던 사람들이 회복되는 놀라운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났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마태복음 28:19) 평택항에서 외국인 선원과 직장인들에게 복음을 전해 온 세월이 쌓이면서 한 가지 확신이 생겼다. 사람을 만나면 복음의 길이 열린다는 것이다. 평택항은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오가는 곳이다. 배에서 만난 외국인 선원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교제하다 보면, 그들은 다시 자기 나라로 돌아갔다. 나는 그때마다 ‘이 사람이 자기 나라에서도 복음을 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그런 마음으로 전도와 제자훈련을 이어오던 중, 무더운 여름날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필리핀에서 사역하는 현지 선교사들이었다. 이전에 부산에서 열린 한 세계선교대회에서 만났던 사람들이었다.
신학대학 총장은 단순히 학문적 능력이 뛰어난 사람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신학대학은 일반 대학과 달리 학문과 신앙, 교회와 사회, 전통과 미래를 함께 바라보아야 하는 특별한 교육기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총장에게는 교수로서의 학문성뿐 아니라 목회자로서의 영성, 지도자로서의 행정력과 경영능력
예수의 부활은 우리 인류에게 죽음을 넘어서 영원한 생명의 세계가 있음을 보여주셨다. 우주 역사는 희랍인이 표상(表象)하는대로 돌고 돌아 제자리로 되돌아 오는 영겁회귀의 과정이 아니라 목적지향적이며, 종말이라는 대단원이 있다. 그리고 죽음이란 하나님이 창조하신 우주 질서
성전 미문의 나면서 못 걷는 걸인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걷게 해주자 놀라워하는 유대인들에게 베드로는 두 번째 설교를 행했다. 오순절 첫 설교 때보다 더 많은 오천 명이나 회심하자 제사장들이 아주 싫어했다. 죽은 자의 부활을 믿지 않는 그들로선 부활하신 예수님이 인간 만사를 다스린다고 가르치니 현실정치 지도자의 입장에서 더욱 발끈할 수밖에 없었다.
살다 보면 사람이 무너질 때가 있다. 어떤 때일까? 사업에 실패했을 때 무너진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무너진다. 건강을 잃었을 때 무너진다. 그럴 때 우리는 절망하게 된다. 그런데 때로는 이것보다 더 깊은 곳에서 사람이 무너진다. 자기 자신을 바라보게 될 때이다. “내가 이렇게 잘못된 삶을 살았구나.” “내가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멀어졌구나.” “내가 이렇게 나쁜 사람이었구나.”
산에 오르면 보이는 것이 달라집니다. 낮은 곳에서는 크게 보이던 것이 높은 곳에 올라가면 작아 보입니다. 또한 낮은 곳에서는 보이지 않던 것이 높은 곳에서는 보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끔 산에 올라야 합니다. 우리 영혼에도 올라야 할 산이 있습니다. 바로 말씀 묵상의 산입니다. 토마스 왓슨은 우리에게 《묵상의 산에 오르라》고 권면합니다. 묵상의 산에 오르면 그리스도가 더욱 선명하게 보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크게 보입니다. 반면에 우리를 힘들게 하던 문제와 염려와 두려움은 작아 보이기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