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미 의회 ‘북한인권법’ 재승인에 거는 기대
미국 상원에서 ‘북한인권법’ 재승인을 위한 법안이 재 발의됐다. 2022년 만료된 지 3년 만이다. 3년 전 당시 상원의원이던 마코 루비오 현 국무장관이 법안 발의를 주도했으나 상원 가결 실패로 답보 상태였던 북한인권법안의 재승인 여부가 주목되는 이유다.
미국 상원에서 ‘북한인권법’ 재승인을 위한 법안이 재 발의됐다. 2022년 만료된 지 3년 만이다. 3년 전 당시 상원의원이던 마코 루비오 현 국무장관이 법안 발의를 주도했으나 상원 가결 실패로 답보 상태였던 북한인권법안의 재승인 여부가 주목되는 이유다.
신학대학 총장은 단순히 학문적 능력이 뛰어난 사람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신학대학은 일반 대학과 달리 학문과 신앙, 교회와 사회, 전통과 미래를 함께 바라보아야 하는 특별한 교육기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총장에게는 교수로서의 학문성뿐 아니라 목회자로서의 영성, 지도자로서의 행정력과 경영능력
예수의 부활은 우리 인류에게 죽음을 넘어서 영원한 생명의 세계가 있음을 보여주셨다. 우주 역사는 희랍인이 표상(表象)하는대로 돌고 돌아 제자리로 되돌아 오는 영겁회귀의 과정이 아니라 목적지향적이며, 종말이라는 대단원이 있다. 그리고 죽음이란 하나님이 창조하신 우주 질서
성전 미문의 나면서 못 걷는 걸인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걷게 해주자 놀라워하는 유대인들에게 베드로는 두 번째 설교를 행했다. 오순절 첫 설교 때보다 더 많은 오천 명이나 회심하자 제사장들이 아주 싫어했다. 죽은 자의 부활을 믿지 않는 그들로선 부활하신 예수님이 인간 만사를 다스린다고 가르치니 현실정치 지도자의 입장에서 더욱 발끈할 수밖에 없었다.
살다 보면 사람이 무너질 때가 있다. 어떤 때일까? 사업에 실패했을 때 무너진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무너진다. 건강을 잃었을 때 무너진다. 그럴 때 우리는 절망하게 된다. 그런데 때로는 이것보다 더 깊은 곳에서 사람이 무너진다. 자기 자신을 바라보게 될 때이다. “내가 이렇게 잘못된 삶을 살았구나.” “내가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멀어졌구나.” “내가 이렇게 나쁜 사람이었구나.”
산에 오르면 보이는 것이 달라집니다. 낮은 곳에서는 크게 보이던 것이 높은 곳에 올라가면 작아 보입니다. 또한 낮은 곳에서는 보이지 않던 것이 높은 곳에서는 보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끔 산에 올라야 합니다. 우리 영혼에도 올라야 할 산이 있습니다. 바로 말씀 묵상의 산입니다. 토마스 왓슨은 우리에게 《묵상의 산에 오르라》고 권면합니다. 묵상의 산에 오르면 그리스도가 더욱 선명하게 보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크게 보입니다. 반면에 우리를 힘들게 하던 문제와 염려와 두려움은 작아 보이기 시작합니다.
한국복음주의협의회(한복협)의 명칭과 조직 개편 등을 둘러싼 내홍이 점점 깊어지고 있다. 한복협의 체제를 바꾸려는 일부 지도부와는 달리 기존 회원들은 사랑의교회 소속의 인사가 한복협의 기구 개편 등에 깊이 관여한 의혹을 제기하며 정치색을 배제한 순수 복음주의 정신의 회복을 촉구하고 나섰다.
‘2026 세계 에큐메니칼 평화대회’가 ‘서울 평화선언’ 발표를 끝으로 닷새간의 일정을 마쳤다. NCCK·WCC·CCA 공동 주최로 열린 대회는 한반도 평화를 군축·비핵화로 연결하는 문제를 주요 의제로 다뤘다. 하지만 ‘평화’라는 복음적 가치를 정치 운동에 접목함으로써 정작 교회가 추구해야 할 복음의 가치를 흐렸다는 비판을 낳았다.
정부가 내년 남북 경제협력 재개에 대비한 융자 예산을 올해보다 3배 이상 확대했다. 현재 남북 간의 공식적인 대화가 단절된 상태에서 정부가 섣불리 예산부터 확대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통일부가 지난 1일 공개한 2027년도 남북협력기금은 1조115억원이다. 남북 경제협력 재개에 대비한 경협기반 융자 예산은 올해 591억원에서 내년 1994억원으로 무려 3배 이상 늘렸다. 경원선 복원 사업에도 남북협력기금 238억원이 편성됐다.
전통적인 선교의 목표는 기본적으로 개인의 구원이었다. 개인을 구원하고 변화시키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세계의 변화는 개인들이 구원받고 변화되는 것의 결과로 주어지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 점에서 선교의 우선적인 목표는 개인의 구원이고 세계의 변화는 부차적인 관심이었다. 그러나 에큐메니칼 선교의 목표는 점차적으로 개인의 변화에서 세계의 변화에 주된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에큐메니칼 선교가 세계의 변화에 주된 관심을 두게 된 뒤에는 다음과 같은 배경이 있었다.
사람은 평안할 때는 자신이 무엇을 의지하며 살아가는지 잘 모릅니다. 그러나 예상하지 못한 위기가 찾아오면 달라집니다. 갑자기 병이 들고, 사업이 흔들리고, 자녀에게 문제가 생기고, 관계가 무너지면 사람은 본능적으로 무엇인가를 붙잡으려 합니다. 바로 그때 믿음의 실체가 드러납니다. 위기는 믿음을 만들어 내기보다 내가 무엇을 믿고 있었는지를 드러냅니다. 성경을 보면 실패한 사람들에게서 반복해서 발견되는 한 가지 모습이 있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께 묻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기브온 사람들이 낡은 옷과 신발, 오래된 떡을 증거로 내놓자 그들의 말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결정적인 실수를 이렇게 기록합니다. “어떻게 할지를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고”(수 9:14) 눈으로 확인했고 사람의 설명도 들었지만 하나님께 묻는 과정이 빠졌습니다. 사울의 마지막도 마찬가지입니다. 역대상은 그의 몰락을 설명하면서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대상 10:14)라고 기록합니다. 유다 역시 국가적 위기에서 하나님보다 애굽의 힘을 의지하자 하나님께서는 “애굽으로 내려갔으되 내 입에 묻지 아니하였도다”(사 30:2)라고 책망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