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북한자유주간’에 쏠린 전 세계의 이목
이번 주일에 미국 워싱톤 D.C.에서 개막될 ‘북한자유주간(North Korea Freedom Week)’에 전 세계 인권단체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북한 주민의 인권 증진과 자유를 위한 국제 연대 행사로 매년 미국에서 개최돼 온 ‘북한자유주간’의 올해 일정은 26일 주일부터 5월 2일까지 로, 북한 인권에 대한 전 세계의 관심을 환기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주일에 미국 워싱톤 D.C.에서 개막될 ‘북한자유주간(North Korea Freedom Week)’에 전 세계 인권단체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북한 주민의 인권 증진과 자유를 위한 국제 연대 행사로 매년 미국에서 개최돼 온 ‘북한자유주간’의 올해 일정은 26일 주일부터 5월 2일까지 로, 북한 인권에 대한 전 세계의 관심을 환기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완다의 삶, 고유성 억지로 만드는 현대 인간상 표본 신앙·윤리 없이 자기 만족 위한 결단 용기로 내세워 인간의 고유성, 하나님과 타인 섬기는 실존의 조건 디즈니-마블의 <완다비전> 속 존재론과 본회퍼의 기독교 철학(2) ◈신학과 실존: <완다비전> 속의 실존적 한계 폭로 본회퍼의 <행위와 존재>에서 주된 비판 대상이 되는 철학 사조가 두 가지 있다. 첫째…
<완다비전>, 자신의 주관적, 자의적, 구성적 인식 체계에 갇혀버린 인간 삶의 방식에 대한 슈퍼히어로판 알레고리 자기만족 위해 타자 조종, 기이한 죄악된 행태 집중 조명 ◈신학과 인식: <완다비전> 속의 자의적 인식 고발 OTT 서비스 시장에서 넷플릭스의 후발주자로 서비스를 개시한 디즈니플러스의 TV 시리즈 <완다비전>이 미국 현지를 비롯, 디즈니플러스 …
학교는 지금 겨울방학과 새 학년의 준비 기간이다. 예년 같으면 교회학교도 겨울 성경학교와 수련회가 열려 교회가 아이들의 소리로 가득 찰 때인데 지금의 교회는 그렇지 못하다. 코로나19로 인해서 모이기 어려운 상황이 1년을 넘어가고 있다. 이전에 누구도 이런 일을 상상도 해본 적이 없기에 무척 당황스럽다. 지금은 성인들도 대면 예배를 드릴 수 있는 환경이 안 돼 비대면으로 예배를 드리는 경우가 많은데 교회학교는 어떻겠는가? 코로나19의 감염 우려로 대면 예배에 못 나가게 하는 부모들이 많이 있다. 교회학교 선생님들은 안타까워하면서도 부모들의 걱정과 염려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하기 때문에 예배 출석을 독려하기 곤란한 상황인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고 이대로 계속 아동·청소년의 신앙교육을 손 놓고 있을 수 없다. 이러다가 아동·청소년기의 신앙이 단절되고 더 나가 아동·청소년이 교회를 떠나 버릴 수도 있겠다는 위기의식이 교회학교 안에 팽배해지고 있다. 이를
러시아 문호 톨스토이가 쓴 책 중에 ‘사람에겐 얼마만큼 땅이 필요한가’라는 책이 있다. 이 책에는 땅을 많이 소유하는 것이 평생의 소원인 농부가 등장한다. 농부는 다른 지방에 그 나라 돈으로 1천 루블만 내면 자기가 원하는 만큼 땅을 소유할 수 있다는 정보를 얻게 되었다. 단, 조건이 아침에 해가 뜨면 출발하여서 해 질 때까지 돌아와야 하고, 자기의 땅이라고 깃대를 꽂아야 소유가 인정되었다. 너무나 광활한 땅을 본 농부는 조금이라도 땅을 더 차지하고 싶은 마음에 정신없이 자기 땅이라고 깃대만 꽂아 놓았다. 그러다 보니 해가 지기 전에 돌아와야 한다는 것을 까맣게 잊고 말았다. 이미 해가 지고 땅거미가 내려앉기 시작할 무렵이어서 출발지점까지 돌아오기는 늦었다. 결국 농부는 출발점에 들어오기 직전에 쓰러져 생명을 잃었다. 필자가 이 책을 읽은 지가 30년이 넘었는데,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볼 때 문득문득 이 내용이 생각난다. 오늘을 사는 현대인이 이같이 앞으로 내달리기만
유대인이라는 정체성, 민족적 우월감과 자존감 근거로 바울은 자신이 전한 복음이 진리임을 어떻게 알았을까 자신이 전하는 복음 진리 계시성과 독립성 강조한 바울 브니엘신학교 총장 최덕성 박사님이 종교개혁 500주년을 앞두고 교회사 속 주요 인물들을 조명한 작품 <위대한 이단자들> 속 주요 인물들을 소개합니다. 기독교 관점에서의 이단이 아니라, 기독교 바깥에…
세계적 석학이자 빌 클린턴 미국 행정부의 노동부 장관을 지낸 로버트 라이시 UC버클리대 교수는 지난해 4월 영국 가디언에 기고한 칼럼을 통해 코로나19로 미
‘낙태법’ 끝나도 끝난 것이 아니다 헌법재판소는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리며 2020년 12월 31일 까지 법을 개정하라고 했다. 하지만 아무런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2021년을 맞이했다. 그러면 ‘낙태죄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냐?’라고 언론을 호도하고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낙태법 무엇보다 아무런 것도 정해지지 않았다. 12월9일 마지막 정기국회에 정…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성도의 삶을 살아가면서, 주의 사역을 해오면서 어김없이 만나게 되는 아주 의아하고 어이없는 현상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교회에서, 그리고 각 성도의 삶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낯설어지는 일입니다. 성도가 교회를 다닌 지도 오래되었고 교회 역시 많은 일을 해오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는 낯설어지고 그 자리에 대신 다른 무엇인가가 놓여 있습니다. 신자 개인은 자신의 활동과 의지, 사람들과의 사귐, 그리고 출처도 불분명한 자기 계발에 놓여 있고, 교회는 그러한 신자 개인의 요구와 자의식을 지지하기 위한 온갖 프로그램과 온갖 활동들로 채워집니다. 많은 성도와 많은 사역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는 신자에게도, 교회에게도 점점 낯설어지고 희미해져만 갑니다. 몇 년 전 한국 기독교계에 소개된 마이클 리브스(Michael Reeves)가 쓴 ‘그리스도 우리의 생명(Christ Our Life)’이란 책에서 첫 페이지 맨 첫 줄에 ‘기독교는 바로 그리스도다!’라고 쓴 이 한 줄이 마음을 줄곧 사정없이 때리고 또 때렸습니다. 리브스는 그 책의 저술 목적을, 스코틀랜드의 청교도 설교자 로버트 머레이 맥체인이 자신의 친구에게 보낸 다음과 같은 권면을 통해 밝혔습니다. “주 예수를 힘써 배우게나. 자신을 한 번 주목할 때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열 배로 주목해 보시게나… 마음을 황홀하게 하는 감각, 바로 그리스도와 그분 안에 있는 모든 것으로 인한 감미롭고도 탁월한 감각으로 자네 영혼을 부디 가득 채워 보시게나.”
주님께서 회칠한 무덤 같은 바리새인들의 위선을 비판하셨습니다. 오늘날 사도 바울이 지적한 대로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을 상실한 채로 살아가는 기독교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역경과 시련이 몰아치면 쭉정이와 알곡이 구별됩니다. 감사한 것은 오랫동안 계속되는 코로나 전염병의 위협 하에서 고통이 있고, 때론 안타까운 희생도 있으나 기독교인들의 본질을 회복시키시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수행한다고 하지만 몸과 마음이 바빠서 천국의 소망을 희미하게 간직하고 있던 교인들이 전염병의 시련을 통해서 천국의 소망을 확실하게 가지게 되고, 부활의 생명을 사모하게 됩니다. 모든 것이 삼위일체 하나님께 감사할 조건이지만, 감사할 것이 너무 많아서 감사를 잊고 지내고 있다가 전염병의 시련을 통해서 감사를 회복하게 됩니다. 거의 일 년여 동안 계속되는 전염병의 위협 가운데 자유롭게 예배드리지 못하고, 신앙생활이 제한받는 비정상적인 상황 가운데 신앙의 자유가 없는 곳에서 목숨을 걸고, 신앙 생활하는 고난 받는 기독교인들의 삶을 다소나마 체험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왜 만족함을 얻지 못하고 불행하다고 여길까? 옛사람들도 오늘과 같은 어렵고 고달픈 시대를 살았다. 시대나 지위 고하를 떠나 비록 오늘은 힘겹고 어렵더라도 내일에 대한 희망으로 힘든 나날을 이겨 나간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오늘날 사람들은 그와 같은 모습이 과거보다 더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 사람의 일생이 길어야 족히 1백 년 안쪽이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이 천 년, 만 년 살 것처럼 시간의 소중함을 모르고 매일 매일을 허비하는 삶을 산다. 사람과 동물의 다른 점이 사람은 생각하고 앞을 내다본다는 것이다. 비록 오늘 죽을 만큼 힘겨워도 내일의 희망을 품고 인내하고 절제하며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자기 자신을 가꾸고 살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지가 못하다. 오늘만 ‘더 편하게’ ‘더 풍족하게’ 살고자 하는 생각을 늘 품고 살기 때문에 내적인 만족을 채우지 못한다. 정신적인 가치를 추구하기보다는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것들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만큼 마음과 정신적으로 공허함에 휩싸여 본인의 존재감을 잃어버리고 살기 때문에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분명 우리 부모님 시대보다는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안락한 생활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이나 내적 만족도는 풍요롭지 않음을 알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