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 [자녀교육 시리즈 9] 하나님이 주신 가장 큰 기쁨, 손주라는 축복

    [자녀교육 시리즈 9] 하나님이 주신 가장 큰 기쁨, 손주라는 축복

    기독일보,

    할머니와 할아버지에게 손주는 어떤 존재일까? 시인 이정록은 그의 시에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것들 때문에 산다”라고 말했다. 그렇다. 손주는 바로 눈에 넣어도 전혀 아프지 않을 만큼 소중한 존재이다. 필자에게는 두 딸과 한 아들이 있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손주는 모두 다섯 명이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거의 매일 손주들과 화상 통화를 한다. 손주 얼굴을 보는 순간, 하루 동안의 걱정과 피로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웃음에는 웃음과 행복만 남는다.

  • 꿈과 비전을 품다

    꿈과 비전을 품다

    기독일보,

    어린 시절, 나무 케이스 속 흑백 텔레비전의 추억이 떠오른다. 만화, 드라마 그리고 레슬링이나 권투경기를 보기 위해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 텔레비전 안으로 빨려 들어갈 듯이 보았다. 텔레(Tele)는 그리스어에서 온 접두사로 멀리(far, distant), 원거리라는 뜻이다. 그래서 텔레비전은 멀리 보는 것이다. 일상에서 쓰는 용어에 텔레폰은 멀리 있는 소리를 전달하는 것으로 전화를 말한다.

  • 큰 복을 담을 그릇을 준비하십시오

    큰 복을 담을 그릇을 준비하십시오

    기독일보,

    그릇이 중요합니다. 그릇이 없으면 물을 담을 수 없습니다. 그릇이 없으면 음식을 담을 수 없습니다. 창고가 없으면 곡식과 각종 보화를 저장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축복의 소낙비가 내려도 그릇이 없으면 담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준비한 그릇에 복을 주십니다. 우리가 준비한 것에 복을 주십니다. 이것은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원리입니다.

  • 에큐메니칼 인간 이해의 주된 경향(3)

    에큐메니칼 인간 이해의 주된 경향(3)

    기독일보,

    인간이 사는 본격적인 장이 현세인가 아니면 내세인가에 따라 인생에 대한 이해는 많이 달라지게 된다. 만약 이 땅이 아닌 영원한 세계가 인간이 살아갈 본격적인 삶의 장이라고 한다면 이 땅위에서의 삶은 그것을 준비하는 삶의 성격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기독교 인간이해에서는 인간의 현세와 내세 중 내세에 더 많은 강조점을 두어왔다. 이러한 이해는 예수의 말씀들과 깊은 연관성을 지니는데, 예를 들면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마 6: 19-20)라고 말씀하심으로써 현세에 살면서도 내세를 늘 준비하는 삶을 살 것을 명하셨다.

  • [사설] 북한 매체 개방하자면서 대북방송은 왜?

    [사설] 북한 매체 개방하자면서 대북방송은 왜?

    기독일보,

    이재명 대통령이 외교부·통일부 등 부처 업무보고에서 “북한 노동신문을 국민에게 못 보게 막는 이유가 뭐냐. 국민이 선전전에 넘어가서 빨갱이 될까 봐 그런 것이냐?”라고 말하며 북한 정보 개방의 필요성을 언급한 걸 놓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시대 변화에 따른 제도적 점검 차원으로 해석할 수 있지만, 북한을 상대로 체제전쟁 중이란 현실을 망각한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 숭실대학교, 숫자가 아닌 역사로 증명된 대학

    숭실대학교, 숫자가 아닌 역사로 증명된 대학

    기독일보,

    오늘날 대학은 각종 지표와 순위, 취업률과 재정 규모로 평가된다. 그러나 과연 대학의 진정한 가치는 숫자로만 환산될 수 있는 것일까. 이 질문 앞에서 숭실대학교의 역사는 분명한 대답을 제시한다. 숭실대학교는 1897년, 한국 최초의 4년제 대학으로 출범했다. 그 출발은 단순한 교육기관의 설립이 아니었다.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세워진 기독교 정신, 그리고 민족의 미래를 향한 책임 의식이 함께 뿌리내린 기독사학이자 민족사학의 시작이었다.

  • [詩] 메리 크리스마스!

    [詩] 메리 크리스마스!

    기독일보,

    요람에서 무덤까지 우리의 삶 마구간에서 십자가까지 그 분의 삶 그 후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십자가에서 부활까지 – 아니요, 이미 십자가와 부활이 있었습니다. 그 분의 영원한 시작에, 마구간의 탄생에, 그분은 하늘 보좌를 버리고 세상에 오시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 개신교의 3대 스승 루터·칼빈·웨슬리를 본받자

    개신교의 3대 스승 루터·칼빈·웨슬리를 본받자

    기독일보,

    오늘의 개신교가 기독교 역사상 경이적인 부흥을 가져올 수 있었던 것은 우리들의 영원한 스승 16세기 독일의 마르틴 루터와 프랑스(스위스)의 존 칼빈 그리고 18세기 영국의 존 웨슬리 이 세 사람이다. 성자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을 깨우친 독일의 마르틴 루터가 있었고 성부 하나님 아버지의 절대주권적인 택정함을 받은 자가 구원받게 됨을 존 칼빈이 깨우쳤으며, 성령충만 받음으로 구원을 완성할 수 있다는 것을 깨우친 영국의 존 웨슬리가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들은 기쁘게 살아갈 수 있다. 그러기에 우리들은 종교개혁자 세 사람이 붙들었던 성경말씀과 그들의 깨우침을 본받아서 살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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