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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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한국 기독교는 우파 쪽으로 기울어져 가는가?
기독일보,서로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극열 대치 상태에 빠져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정치적인 노선이 문제이다. 민주주의니, 자유민주주의니 하면서 민주를 앞장세우지만 속셈은 따로 있다. 국민은 안중에도 없고, 오직 '정권 유지냐 아니면 정권 탈취냐'의 싸움이다. 이러다간 소위 말하는 외국에서 자주 발생하는 내란(內亂)이 일어날 것 같은 조짐이 보여서 극히 염려와 걱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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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교도와 공공신학 – 리처드 백스터의 공공신학적 면모와 시사점(2)
기독일보,토머스 풀러는 영국 국교회의 계서제와 예배를 반대하는 이들을 청교도라고 부르는 데서 청교도의 기원을 찾으며, “퓨리탄(청교도)”이라는 용어가 최초로 사용된 것은 1564년이라고 설명한다. 한편, 윌리엄 할러는 엘리자베스 1세의 종교정책을 비판하며 1572년 영국의 개혁가들이 의회에 제출한 “의회를 향한 권고문”(An Admonition to the Parilament)이 청교도 운동의 주요한 시발점이었다고 주장한다. 그 내용은 로마 가톨릭의 모든 잔재를 제거하고 오직 기록된 성경 말씀에 따라 영국교회와 예배를 개혁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엘리자베스 여왕은 이를 단호히 거절하고 그들을 비하하는 의미에서 “퓨리탄”이라고 불렀다. 흔히 청교도 시대는 엘리자베스 1세가 통치하는 1558년부터 관용령(The Toleration Act)이 시행된 1689년까지를 일컫는데, 청교도 안에는 교회 정치적으로 볼 때, 장로교회, 회중교회, 침례교회 등 다양한 갈래가 있었다. 그러나 신학적으로는 행위 공로를 가르치는 로마 가톨릭, 삼위일체를 반대하는 소키누스, 그리고 알미니안과 반율법주의자를 반대한다는 점에서 신앙적, 교리적 토대를 공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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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87) 대제사장적 기도(3)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기독일보,로마 가톨릭이 교회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대신하는 존재와 자리, 그리고 직분을 만들고, 다른 중보자를 세우고, 죄 용서받고 구원받는 길도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인간적인 방법을 제시하고 대체물들을 만들며 교회를 완전 혼합주의, 짬뽕 종교가 되게 하고, 인본주의로 변질되게 하자 종교개혁이 일어났었는데 지금 이 시대에도 교회개혁이 절실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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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도 하나님이 창조하신 소중한 피조물인가?
기독일보,그러나 이번 행정명령 발효로 미 국무부 웹사이트에서 ‘X’ 선택란이 사라졌으며, 모든 연방 공문서에서도 성을 표현할 때 ‘젠더(gender)’ 대신 ‘섹스(sex·생물학적 성)’를 써야 한다는 지침이 내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임 정부가 강화한 성소수자 보호 정책을 대대적으로 철회할 계획임을 시사했다. 그는 “주관적인 성 정체성은 개인의 내적 자아 감각에 불과하다”며 “인종과 젠더를 공공 생활과 사생활의 모든 측면에 사회공학적으로 주입하려고 시도하는 정부 정책을 끝내겠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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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러-우 참전 북한군 포로 데려올 방법 없나
기독일보,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한 북한 병사가 우크라이나 군에 포로로 잡히면서 신병처리 문제가 국제사회에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통일부는 생포된 북한 병사 송환 문제와 관련해 “국제조약에 따른 국제법적 검토 및 관련국과의 협의가 필요한 사안”이라고 하면서도 한국행을 희망할 경우 전원 수용한다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파악돼 그 실현 가능성에 이목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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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이 더욱 외롭고 두려운 쪽방촌과 독거어르신들을 생각하며
기독일보,이제 곧 설날 명절이 돌아온다. 하지만 가족의 품이 그리운 독거어르신들은 명절이 되면 더욱 외롭고 고독하다. 해체된 가정이 늘어나고, 1인 가구가 많아질수록 우리 사회는 더욱더 고독하고 어두워져만 갈 것이다. 영국 같은 선진국도 지난 2018년 1월 ‘외로움부’ 장관을 임명했고, 일본은 2021년 2월에 ‘고독부’ 장관을 임명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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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법과 가이사의 법(1)
기독일보,바리새인들이 예수께 가이사(황제)에게 세금 바치는 것이 가하냐고 물었을 때 예수님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하나님이 인류구원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 교회와 함께 세속국가를 세우시고 교회와 국가에 각각 그 고유한 영역을 정해주셨다는 말씀으로서 이후 기독교 세계에서 종교와 정치의 분리에 관한 가장 고전적인 근거가 되었다. 중세 기독교 교리를 확립한 어거스틴은 「천국론(The City of God)」에서 세속적인 국가권력이 영적인 교회권력과는 철저하게 분리되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콘스탄틴 황제의 기독교 공인과 국교화 이후 로마가톨릭교회는 중세시대를 통해 교황권의 절대적 우위에 바탕을 두고 국가를 종교에 예속시켰다. 이러한 교회권력에 의한 세상권력의 지배는 교회의 부패로 이어져서 종교개혁을 야기하였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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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포되어 빌라도의 법정에 서신 예수: 두 가지 역설(6)
기독일보,누가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하도록 했는가? 사복음서를 자세히 보면 저자들의 관점에 따라 “무리”의 차이가 있다. 마가와 요한에 의하면 이 무리는 대제사장과 장로들과 서기관으로 구성된 성전 귀족들이었다. 마가는 대제사장들이 예수를 빌라도에 넘겨주고 고발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새벽에 대제사장들이 즉시 장로들과 서기관들 곧 온 공회와 더불어 의논하고 예수를 결박하여 끌고 가서 빌라도에게 넘겨 주니”(막 15:1). “대제사장들이 여러 가지로 고발하는지라”(막 15:3). 비록 대제사장들이나 서기관들이 예수를 고발했다 하드라도 총독 빌라도는 이것이 유대인들의 종교적인 문제이므로 이 일에서 손을 떼기를 원했고 예수를 석방하고자 하였다. 그런데 여기서 새로운 변수가 있었는데 여태까지 예수를 열광적으로 따랐던 군중들의 변심(變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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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와 이드로
기독일보,평신도사역에서 출애굽기 18장 18절은 빠질 수 없는데,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모세에게 하는 말이다. “네가 혼자 할 수 없으리라.” 이것은 멜빈 목사님의 책, ‘목회, 혼 자 할수 있는가?’와도 같은 맥락이라고 보여진다. 그런데 나는 여기에서 모세가 어떻게 장인의 충고를 받아들였을까 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어보려한다. 대개 요즘 사람들은 남의 충고를 잘 받아들이지 않는다. 학교에서 선생과 학생의 위치에서는 가르치고 배움이 자연스럽게 있게 된다. 그러나 가족간에, 친척간에 충고하고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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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기업을 넘어 영원한 기업으로(19)
기독일보,다음은 성령 하나님의 시대에 어떤 삶이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활인지 선포한 롬12장~15장의 말씀이다. 이는 성령시대에 우리에게 주신 삼위일체 하나님의 은사와 삶의 귀한 지침을 정리한 말씀으로 성령 하나님이 함께하는 자의 삶을 핵심적으로 정리한 말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