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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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중대한 6월 3일 대선과 그 의미: 한국, 중국의 위성국으로 전락할 수도
기독일보,2017년 12월 문재인 대통령은 시진핑을 만나 “중국은 높은 산봉우리, 한국은 작은 나라”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시진핑 주석이 제시한 집권철학에 깊이 공감한다”며 “중국의 꿈은 중국만의 꿈이 아니라 아시아와 세계의 꿈”이라고까지 했습니다. 심지어 “중국과 한국은 운명 공동체”라며 시진핑의 ‘민주적 리더십’을 극찬했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중공군의 한국 침공조차 외면하며, “중국과 한국은 현대사의 고난을 함께 극복해온 동지”라고까지 표현했습니다. 하지만 시진핑은 문재인 재임 중 한국을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습니다. 코로나19 초기에도 문 대통령은 중국과의 우호를 최우선으로 삼았습니다. 대한의사협회의 중국발 입국금지 요청을 무시하고, 국내 마스크 대란 속에서도 중국에 마스크를 수출했습니다. “중국의 어려움은 곧 우리의 어려움”이라며 시진핑에게 말했죠. 이에 한국 학계 일각에서는 “문재인이 마치 한국 대통령이 아니라 중국 대통령 같다”는 비판이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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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후 혼돈 벗어나 이웃 섬기는 나라로
기독일보,사람이 인생을 살다보면 고속도로와 같은 성공적인 길을 갈 때도 있지만 때로는 좌절과 낙심 그리고 외로움 같은 고통의 터널을 지날 때도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격랑을 통과하고 있는 배와 같다. 원치 않는 조기 대선을 통하여 서로의 민낯을 보이고 있다. 상대 후보를 비방하고 조롱하는 것을 넘어서 여성과 노인을 비하하며 차별하고 있다. 잘한 것을 칭찬하지 못할지언정 사실에 근거하지 않는 네거티브 공작을 일삼는 형태는 근절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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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바 기도회 설교] 리바이벌 코리아는 계속됩니다
기독일보,주전 605년 아브라함의 후손인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은 지금 머나 먼 이방 땅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와 있습니다. 도대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요? 그 이유를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1유다 왕 여호야김이 다스린 지 삼 년이 되는 해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을 에워쌌더니 2주께서 유다 왕 여호야김과 하나님의 전 그릇 얼마를 그의 손에 넘기시매 그가 그것을 가지고 시날 땅 자기 신들의 신전에 가져다가 그 신들의 보물 창고에 두었더라 (단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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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칼럼㊱] 6.25 한국전쟁의 진실, 폭풍(2)
선교신문,맥아더는 횡설수설하는 채 총장의 전시 보고를 불쾌해하며 한국군의 수준은 전투 병력이 아니라 경비대 수준이며 해산 직전의 군대라고 탄식한다. 1950년 7월 1일 채병덕 총장이 해임되고 미국에서 교육 중이던 33세의 정일권이 육군총장으로 취임한다. 동경의 맥아더는 워커 8군단장을 통해서 오키나와의 딘에게 인민군의 남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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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가만히 서서 보라
기독일보,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의 노예생활로부터 해방시키는 지도자로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았던 모세는, 그들을 무사히 출애굽시키는 마지막 단계인 홍해를 건너기 전, 그들을 맹렬히 추격하는 바로의 군대를 보고 두려움에 부르짖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굳세고 조용한 마음자세를 가질 것을 명하고 하나님께서 친히 싸우시며 이루시는 구원을 보리라 예언하였다(출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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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가 받은 십자가형, 가장 잔인하고 치욕스런 형벌(6)
기독일보,불교에서 성불(成佛), 즉 붓다가 된다는 것은 곧 집단을 위한 희생양이 되는 것을 의미했다.(정일권, 『붓다와 희생양: 르네 지라르와 불교문화의 기원』, 서울:SFC 출판부, 2013. 203-204.) 붓다는 은폐된 희생양이다. 붓다가 되는 것은 공동체를 위하여 언제든지 자기 자신의 몸을 보시(普施)하여 마치 양초가 자신의 몸을 불사르는 것처럼 소신(燒身)공양(供養)을 하며 희생양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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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누가 집권하든 ‘간첩법’ 반드시 개정해야
기독일보,한미연합훈련 군사기밀을 중국군 정보조직에 유출한 혐의로 기소된 현역 병사가 중국 출신으로 밝혀지면서 안보 이적 행위에 대처하는 허술한 법이 도마 위에 올랐다. 이 병사가 사실상 간첩 행위를 했음에도 북한 이외의 나라를 대상으로 저지른 범죄를 처벌하지 못하는 현행 ‘간첩죄’의 허점이 또다시 드러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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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형 잡힌 믿음의 여정-구원의 두 축(2)
기독일보,앞선 내용을 중심으로 하여, 기독교 신학의 역사 속에서 기초 믿음과 건설 믿음, 그리고 그와 관련된 기초(기본)구원과 건설 구원의 개념이 어떻게 이해되고 논의되어 왔는지 신학자, 성경학자, 신학교수들의 견해를 바탕으로 논리적으로 증명해 보겠습니다. 앞선 1부 내용에서 제시된 기초 믿음과 건설 믿음의 구분은 구원의 여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틀을 제공합니다. 이는 단순히 개인의 신앙 경험을 넘어, 성경 전체의 가르침과 기독교 신학의 역사 속에서 깊이 있게 논의되어 온 주제와 맞닿아 있습니다. 본 논증은 고대, 중세, 현대 신학자들의 견해를 살펴봄으로써 이 두 개념의 신학적 타당성을 확증하고, 성경적 근거를 더욱 공고히 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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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법과 가이사의 법(19)
기독일보,시편 기자는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다”고 노래하며 인간 생명의 창조를 신비로 고백한다(시 139:13).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하나님은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다”고 말씀하신다(렘 1:5). 또한 모세의 율법은 임신한 여인을 쳐서 낙태하게 했을 경우, 단순한 사고라 할지라도 생명에 대한 책임을 물어 벌금을 부과하도록 규정하고 있다(출 2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