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미 의회 ‘북한인권법’ 재승인에 거는 기대
미국 상원에서 ‘북한인권법’ 재승인을 위한 법안이 재 발의됐다. 2022년 만료된 지 3년 만이다. 3년 전 당시 상원의원이던 마코 루비오 현 국무장관이 법안 발의를 주도했으나 상원 가결 실패로 답보 상태였던 북한인권법안의 재승인 여부가 주목되는 이유다.
미국 상원에서 ‘북한인권법’ 재승인을 위한 법안이 재 발의됐다. 2022년 만료된 지 3년 만이다. 3년 전 당시 상원의원이던 마코 루비오 현 국무장관이 법안 발의를 주도했으나 상원 가결 실패로 답보 상태였던 북한인권법안의 재승인 여부가 주목되는 이유다.
이번 주일에 미국 워싱톤 D.C.에서 개막될 ‘북한자유주간(North Korea Freedom Week)’에 전 세계 인권단체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북한 주민의 인권 증진과 자유를 위한 국제 연대 행사로 매년 미국에서 개최돼 온 ‘북한자유주간’의 올해 일정은 26일 주일부터 5월 2일까지 로, 북한 인권에 대한 전 세계의 관심을 환기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내년에 선진 비기축통화국 평균을 넘어설 것이라는 위험한 전망이 나왔다. 국가채무 증가 속도가 경제 성장 속도보다 빠른 결과라는 분석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최근 발간한 ‘재정모니터’ 4월호에서 한국의 GDP 대비 일반정부 부채비율을 올해 54.4%에서 내년 56.6%까지 상승할 것으로 예측했다. 일반정부 부채란 국가채무에 비영리 공공기관의 부채를 합친 것으로 국가채무(국고채)보다 더 넓은 범위를 담아 IMF 등 국제기구에서 국가 간 재정 건전성 비교에 주로 활용된다.
교회의 미래는 건물이나 프로그램에 있지 않습니다. 교회의 미래와 생명은 성령님과 동행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초대교회는 규모가 작았고 조건도 열악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세상을 뒤흔들었습니다. 이유는 단 하나, 성령님과 함께하는 교회였기 때문입니다. ‘성령님과 함께하는 교회’는 단순한 구호가 아닙니다. 교회가 다시 붙들어야 할 신앙의 본질이자 복음의 핵심입니다.사도행전은 초대교회의 역사서입니다. 어떻게 교회가 세워졌고, 어떻게 복음이 전파되었는지를 생생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교회와 복음 전파의 중심에는 언제나 성령님
몇 주 전, 수백 명이 모인 교회에서 부흥회를 마친 저녁이었다. 담임목사님 내외와 나눈 짧은 대화 속에서 사모님의 한마디가 유난히 마음에 남았다. “이번 부흥회에서 ‘거룩한 바보가 되라’는 말씀이 가장 깊이 새겨졌습니다.” 지성과 영성을 겸비한 분의 입에서 나온 이 고백은 신앙의 본질을 꿰뚫는 고백처럼 들렸다.우리는 보통 ‘바보’라는 말을 어리석고 미련한 사람, 손해를 감수하고도 자신의 이익을 따지지 못하는 사람,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뒤처진 사람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사용한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 안에서 말하는 ‘거룩한 바보’는 전
사도 바울은 예수가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된 것은 성결의 영,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증언한다: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롬 1:4). 성령은 생명의 영이기 때문에 인간으로 죽은 예수에게 생명을 부여하셨다. 예수의 신성은 하나님이심으로 죽을 수 없다. 죽음과 음부의 권세가 예수의 신성 안에 있는 생명의 능력에 굴복했기 때문이다.
거리에서 설교 중이던 목회자가 경찰에 긴급 체포되는 장면이 담긴 영상이 온라인에 확산되며 ‘종교의 자유’ 침해 논란이 격화하고 있다. 해당 영상은 영국 왓퍼드 오아시스 시티 교회를 담임하는 스티브 메일 목사가 거리에 지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기독교 복음을 전하던 중 경찰관 3명에 의해 체포되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충격을 안겨줬다.
탈북민 강제북송반대 범국민연합이 기자회견을 열어 중국 내 탈북민 구금 실태와 북송 이후 예상되는 인권 침해 위험성을 알렸다. 이들이 지난 20일 서울 명동 중국대사관 앞에서 성명을 발표하고 중국 정부의 탈북민 강제북송 중단과 인권 보호를 촉구하고 나선 속사정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세상에는 오래된 두 개의 길이 있다. 하나는 상대를 밀어내며 나만 살아남으려는 길, 상극(相剋)이고, 다른 하나는 서로를 살리며 함께 살아가려는 길, 상생(相生)이다. 이 두 개념은 단순한 윤리적 선택이 아니라, 인류 문명의 방향을 가르는 근본적 기준이다. 오늘 우리가 마주한 세계의 위기는 결국 이 두 가치관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귀결된다.
헤롯 왕이 할례자들의 참소를 받아(11절) 교회지도자를 해하려 결정하고서 우선 여동생 헤로디아의 원한도 풀어줄 겸 야고보를 죽였다. 수장격인 베드로도 잡아 처형시키려 했으나 무교절이 이미 시작되어서 절기 후에 집행하려 옥에 가두었다. 베드로가 기적적으로 탈출한 전력(행5:17-21)이 있다는 경고를 받았거나 이미 널리 알려졌던 것 같다. 군인 넷씩 네 패 16명이 교대로 24시간 철통같이 지키게 했다.
벤스 헤브너(Vance Havner)의 한 마디가 오늘 가슴에 크게 와닿았다. “Popularity has slain more prophets of God than persecution ever did.“ “인기는 박해보다 더 많은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죽였다”라는 뜻이다. 이 짧은 문장은 우리에게 매우 불편한 진실을 드러낸다. 우리는 흔히 믿음의 사람을 무너뜨리는 가장 큰 위협이 외부로부터 오는 핍박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