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 하나님의 법과 가이사의 법(14)

    하나님의 법과 가이사의 법(14)

    기독일보,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11장에서, 자칭 사도라 하며 그리스도의 이름을 팔고 다니는 거짓 교사들을 “광명의 천사로 가장한 사탄의 일꾼”으로 단정하였다(고후11:13-15). 바울은 이들이 외형상 ‘의의 일꾼’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성경을 왜곡하고 사람들을 속이는 자들이라 경고하였다. 오늘날의 이단과 사이비 역시 겉으로는 경건해 보이고, 헌신적이며 심지어‘봉사 단체’처럼 포장되기도 하지만, 그 실체는 교리 왜곡, 정신적 지배(가스라이팅), 그리고 사회적 해악이라는 발톱을 숨기고 있는 현대의 광명의 천사들이다.

  •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깨어 준비하는 성도의 자세(1)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깨어 준비하는 성도의 자세(1)

    기독일보,

    오늘 우리는 다가올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 그리고 우리 각자의 인생의 마지막 때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에 대해 깊이 묵상하고자 합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날은 도적같이 임할 것이며, 그 날에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불에 녹아 사라질 것입니다 (벧후 3:10). 이러한 엄중한 때를 앞두고 우리는 과연 어떠한 자세로 살아가야 할까요? 오늘 본문과 제시된 성경 구절들을 통해 성도가 준비해야 할 자세를 1부와 2부로 나누어 살펴보고, 우리의 삶에 깊이 새기고자 합니다.

  • 좌파 목사는 이단이다

    좌파 목사는 이단이다

    기독일보,

    좌파 목사는 사회주의를 지지하고 사회주의가 지향하는 바를 이루려는 목사이다. 그런데 사회주의는 성경의 신앙과 맞지 않다. 사회주의는 인간이 완전하여 평등한 세상을 이룰 수 있다는 무신론이다. 그리고 이 세상은 오직 이 땅이 전부라고 믿는 유물론이다. 그러나 교회는 인간을 죄인이고 완전하지 않아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는 유신론이다. 그리고 이 세상도 보이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천국과 지옥이 있기에 영혼을 구원해야 한다는 영혼 구원의 사명을 말한다. 사회주의는 성경을 부인해야만 가질 수 있는 사상이다.

  • [사설] 고난주간, 영적 깊은 잠에서 깨어날 때

    [사설] 고난주간, 영적 깊은 잠에서 깨어날 때

    기독일보,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을 깊이 묵상하는 고난주간이다. 고난주간은 예수께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한 후 빌라도 법정에서 사형 언도를 받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부활주일 직전까지의 일주일로 한국교회, 특히 그리스도인들에겐 신앙을 재점검할 좋은 기회다.

  • 십자가에 달리신 왕, 나사렛 예수(7)

    십자가에 달리신 왕, 나사렛 예수(7)

    기독일보,

    종교인류학자 지라르는 그의 저서 『폭력과 성스러움』에서 예수의 십자가 죽음은 하나님의 뜻에 따른 인간 구원의 상징이 아니라 당시 유대인 사회에 내연한 갈등과 반목과 폭력을 해소하기 위해 인간이 만들어낸 하나의 희생물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하여 정통 기독교 학자들의 비판을 받았다.

  • 하나님께 구원해달라고 큰소리칠 수 있는가?

    하나님께 구원해달라고 큰소리칠 수 있는가?

    기독일보,

    “주의 법이 나의 즐거움이 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내 고난 중에 멸망하였으리이다. 내가 주의 법도를 영원히 잊지 아니하오니 주께서 이것들로 나를 살게 하심이니이다. 나는 주의 것이오니 나를 구원하소서 나는 주의 법도를 찾았나이다.”(시119:92-94) 본 기자는 고난 중에 멸망치 않고 구원 얻어 살게 되었음에 감사하여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런데 고난에서 구원 받은 경로가 흥미롭습니다. 고난 중에 주의 법이 자신의 즐거움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주의 법대로 따랐더니 고난이 끝났더라는 것입니다.

  • 영원한 생명에 관하여

    영원한 생명에 관하여

    기독일보,

    ‘이명호’라는 분이 쓴 시를 하나 읽었다. 네 줄밖에 안 되는 아주 짧은 시인데, 임팩트가 강해서 여러 번에 걸쳐 읽고 묵상해 보았다. 잘 모르는 이름이라서 인터넷에 찾아보니 자칭 ‘발로 시 쓰는 뇌성마비 무명 시인’이라고 한다. 한편으론 복음성가의 작사가이기도 하단다. 뇌성마비 환자에다가 발로 쓴 시라고 하니 더욱 의미가 달라 보이는 내용이다. 그의 시를 아래에 소개한다.

  • 복음으로 읽는 구약 선지서(23)

    복음으로 읽는 구약 선지서(23)

    기독일보,

    이사야 9:1-7은 앗수르의 지배하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북이스라엘 백성에게 장래에 찾아올 구원의 소식을 담고 있다. 이를 통해 여호와께서 패역한 언약 백성을 여전히 사랑하시며, 그들이 회개로 돌이켜 여호와를 찾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 요한복음(98) 다시 갈릴리에서

    요한복음(98) 다시 갈릴리에서

    기독일보,

    요한복음 21장은 부록, 예수님과 제자들의 갈릴리에서의 재회(Reunion) 장면이다. 장소는 갈릴리 호수, 반지처럼 둥근 형태의 호수라 해서 갈릴리라 불리는데 이게 원래 이름이다. 수금을 닮았다고 게네사렛 호수라 불리기도 하고, 티베리우스 황제에게 헌정되었다고 디베랴 바다로 불리기도 한다. 이스라엘의 가장 큰 호수이자 가장 아름다운 곳, 연중 따뜻하고, 고기도 많다. 성지 순례 때 유람선을 타고 “아름답다 갈릴리야, 네 이름이 아름답다” 감격하며 찬송을 불렀던 곳, 이 호수는 현대 이스라엘의 주요 식수원이기도 하고, 여기 물을 스프링클러를 작동해 광야를 옥토로 만들기도 한다.

  • 조용한 혁명을 일으키는 부활의 능력

    조용한 혁명을 일으키는 부활의 능력

    기독일보,

    하나님은 조용한 혁명을 일으키시는 분입니다. 혁명(革命)이란 단어는 무거운 단어입니다. 혁명이란 급진적인 변화를 의미합니다. 혁명이란 왕이 바뀌는 것입니다. 통치자가 바뀌는 것입니다. 실로 엄청난 사건입니다. 혁명이란 단어를 두려워하는 까닭은 혁명과 함께 수많은 사람이 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는 감옥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유혈 혁명은 결코 조용히 일어날 수 없습니다.

사설/칼럼의 인기 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