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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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진화론을 믿으세요?
기독일보,모든 사람들은 기독교 신앙의 중요한 핵심인 <창조론>을 깨부수고 <진화론>이 가장 설득력 있는 자연과학이라고 믿고 있다. 인간이 과학을 우상화하면서 <진화론>도 과학의 결정체라고 해서 철석같이 믿고 있다. 그러나 진화론은 그냥 가설(假說)이고 논(論)이고, ‘그럴 것이다’라는 의견이고 추측일 뿐이다. 그런데 이것을 과학으로 믿는 사람이 참으로 많다. 대학 교수들은 물론 모든 지성인, 유치원에서 초·중·고·대학에 이르기까지 <진화론적 세계관>을 가르치고 있다. 이는 마치 기독교인들이 성경을 믿듯이 그들은 진화론을 사상체계로 세우고 그것을 바탕으로 역사, 철학, 문학, 과학, 예술에 접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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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9.11테러 23주년, 안전지대는 없다
기독일보,9.11 테러가 발생한 지 23년이 지났다. 우리 기억 속에선 가물가물하지만, 미국인들은 아직도 그날의 충격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모습이다. 테러로 완전히 붕괴된 세계무역센터 건물터에 세워진 ‘그라운드 제로’와 9.11 테러 희생자 헌정된 공간인 ‘리플렉팅 풀’(reflecting pool) 주변에선 희생자를 추모하는 집회가 연중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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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68) 알고 행하면 복이 있다
기독일보,프란치스코 교황이 즉위한 이후 임금이나 황제를 연상시키는 ‘교황’보다는 ‘교종’이라는 호칭을 붙이는 사례가 늘었다고 하지만 둘 다 ‘교회의 으뜸’이라는 말이다. ‘하느님의 종들의 종’이라는 표현도 하는데 이 호칭은 하느님의 모든 종들 중 가장 낮은 종이라는 것인지, 가장 으뜸이 되는 종이라는 것인지는 좀 혼란스럽다. 혹시 여전히 높아지려는 욕망이 반영된 호칭이라면 성경과는 거리가 먼 호칭일 것이다. 실제로 400여 년 전 로마 교황청이 유럽에서 갖는 정치적 권력이나 위상 때문에 동양인들이 황제급 지위로 받아들여 ‘교황’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0 개회-1965.12 폐회) 이후 쇄신 작업을 하며 이 교황이라는 용어가 적절치 않다는 주장도 제기 되었으나 여전히 사용되고 있고, 교황청은 지금도 가톨릭 최고의 통치기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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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로 볼 것인가 ‘꽃’으로 볼 것인가?
기독일보,나태주 시인의 시를 좋아하는 이들이 많다. 나 역시 그분의 시를 좋아한다. 이유는 간결한 문장이지만 그 의미는 깊고 산뜻하기 때문이다. 그가 쓴 시 중 가장 유명한 시는 바로 이 내용이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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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에게 은과 금이 있었다면?
기독일보,베드로가 나면서 앉은뱅이를 말씀 한마디로 낫게 하는 기사를 보면 우리의 관심은 솔직히 오직 주님의 그 크신 능력에만 쏠립니다. 한 명의 예외 없이 신자라면 너무나 확실히 알고 있는 영적 진리 하나는 주님께는 능치 못할 일이 없다는 사실일 것입니다. 그래서 이왕이면 크고 풍성한 은혜를 받기를 소원합니다. 꼭 풍요롭게 살려는 뜻이 아니라 최소한 병이 들거나 힘든 일이 생길 때만이라도 그 고난에서 벗어나고 싶어 합니다. 이는 결코 나쁜 신앙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조금 더 깊이 생각해볼 여지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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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차 로잔대회의 역사적 개최와 성공을 기대한다(3)
기독일보,로잔 운동의 공식 문서인 “로잔 언약”(1974), “마닐라 선언문”(1989), 그리고 “케이프타운 서약”(2010)은 종교다원주의에 대해 철저히 비판적인 견해를 표방하고 있다. (https://lausanne.org/ko 참조). 따라서 “3차 로잔대회(2020.10.16.-25, 남아공 케이프타운)는 안타깝게도 비성경적인 혼합주의자들과 종교 다원주의자들을 복음주의 진영으로 초대하는 대회였다”는 주장은 사실에 입각하는 근거없는 비난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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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선교적 시각으로 보기(1) ‘구원의 놀라운 드라마’
선교신문,본 글은 교리적, 학문적 내용이 아니고 신앙과 선교에 관한 글로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과 선교적 열정이 식어져서 교회의 본질과 존재 이유를 점점 잃어가는 듯해 보이는 작금의 한국교회를 향해 지금도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말씀을 통해서 강력하게 우리에게 진정으로 요구하시는 바가 무엇인지에 대한 개인적인 묵상을 기록한 것이다. 성경을 보는 관점은 일례로 구속사적, 언약적, 종족적, 연대기적, 성경 인물적 관점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이 가운데 어느 한 관점으로만 본다면 편향적이 되어 성경 전체에 대한 하나님의 균형적인 시각을 놓칠 가능성이 많아진다. 하나님의 온전한 시각으로 성경을 읽고 이를 통해 그분의 섭리와 깊은 뜻을 발견하여 올바른 신앙과 삶을 구현하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라면, 과연 어떤 관점에서 성경을 보면 좋을지 오랫동안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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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배골] 치유가 필요하다
치유가 필요한 시대이다. 상처 입은 영혼과 가정, 뒤틀린 관계와 병든 사회도 치유 받아야 한다. 힐링 푸드, 힐링 여행처럼 힐링(healing)이란 단어가 보편적으로 쓰이는 시대이다. 스트레스가 많은 현대인들에게 치유는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지치고 고달픈 삶에서 몸과 마음의 쉼을 얻고, 온전한 회복과 치유를 갈망하는 시대에 세 가지 전인적 치유가 필요하다.하나는, 영혼의 치유이다. 하나님을 향하여 마음의 창을 열지 못할 때 안식을 누리지 못하고 마음이 복잡해진다. 소유가 있는데 평안이 없고 쾌락을 누리면서 만족이 없다. 특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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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을 살리는 지도자 영을 죽이는 지도자
기독일보,지도자는 어떤 집단의 이익과 번영을 위해서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는 자다. 그들은 어떤 집단을 안정과 번영, 그리고, 발전의 길로 이끌어 가는 능력을 가진 자다. 좀 더 냉정하게 지도자들을 분류해 보면, 집단이나 국가를 생명과 번영의 길로 인도해 나가는 지도자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고통과 패망의 길로 인도하는 자도 있다. 생명의 길로 인도하는 지도자는 위대한 영웅 칭호를 듣게 되고, 집단이나 국민을 고통과 근심에로 몰아가는 자는 소인배, 또는 역적이란 말을 듣는다. 여기에 몇몇 훌륭한 지도자와 그렇지 못한 자들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