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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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군인 홀대하면 나라는 누가 지키나
기독일보,정부가 군인에게 지급하는 국방비를 제때 지급하지 못해 말들이 많다. 표면적으론 예산 집행상의 문제라고 말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 볼 때 상당히 위험한 신호가 감지된다. 정부가 연말에 군에 지급했어야 할 국방비 예산은 1조3천억이다. 충격적인 건 장병들이 먹고 입는데 쓰는 급식 피복비용 600억 원도 미지급됐다고 한다. 전투기와 미사일 운영에 드는 예산도 아니고 병사들의 필수 생활과 관련한 돈도 못줄 정도라면 뭔가 나라 살림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 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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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北 억류 선교사 잊고 지낸 한국교회
기독일보,한국교회총연합 대표회장 김정석 목사가 언론과의 신년 간담회 자리에서 북한에 억류된 한국 선교사 송환 문제에 적극 대응겠다는 뜻을 밝혔다. 정부만 바라보던 종전 자세에 머물지 않고 교회 연합 차원에서 좀 더 책임 있는 주체로 나서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해석된다. 김 대표회장은 지난 8일 가진 언론과의 간담회에서 억류 선교사 송환 문제에 대해 “그동안 국제 정세와 남북 관계의 특수성으로 인해 한국교회가 공식적으로 개입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하지만 “이제는 억류 선교사들의 생사 확인과 석방을 위해 움직이겠다”며 “조만간 입장을 정리한 공식 성명을 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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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 사역의 새로운 지평을 열라(4)
기독일보,평신도 사역의 새로운 지평을 열기 위해서는 종교개혁의 본질로 돌아가야 합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1517년 10월 31일 비텐베르크 대학의 게시판에 95개 조항에 달하는 논제를 가지고 캐톨릭의 비성경적인 요소를 반박하였습니다. 마틴 루터를 비롯한 종교개혁가들은 중세 교회가 얼마나 비성경적인 요소가 많은지를 성경을 정확하게 해석함으로 고발하였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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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 ‘가나’ 대사님
기독일보,나는 서부 아프리카 ‘가나’에 가본 일이 없다. 그러나 25년 전에 내가 운영하는 한국칼빈주의연구원(The Institute for Calvinistic Studies in Korea)에 가나 목사님이 유학을 왔다. 이름은 임마누엘 사수 오포리(Emmanuel Sasu Ofori) 목사였다. 그는 가나에서 대학과 신학교를 공부하고 장래가 촉망되고 학구열이 대단했다. 그는 전형적인 흑인이지만 체격이 장대하고 신학뿐 아니라, 25년 전인데도 컴퓨터에 관심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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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의 논리가 지배할 때, 문명은 어디로 가는가
기독일보,미국의 베네수엘라 군사행동, 특히 마두로 대통령 체포를 목표로 한 무력 개입 논란은 단순한 외교·군사적 사건을 넘어 오늘날 세계 질서의 근본을 묻는다. 이 사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국의 대만 포위 압박과 함께, 강대국이 자국의 이익과 영향권을 앞세워 국제 규범을 선택적으로 해석하는 현대 패권주의의 노골적 귀환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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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별이어야 하나? (창세기 15:1-7절)
기독일보,아브라함은 사로잡혀 갔던 조카 롯을 구출하고 전쟁에서 돌아왔다. 그는 승리를 거두었지만, 그 승리는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에 의한 것이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직후, 아브라함의 마음에는 안도보다 설명하기 어려운 두려움이 스며들었다. 외적으로는 모든 상황이 정리된 듯 보였지만, 그의 내면은 여전히 불안과 염려에 사로잡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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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밥퍼’ 둘러싼 무익한 소송 끝내야
기독일보,서울 동대문구 ‘밥퍼나눔운동본부’ 건물을 둘러싼 다일공동체와 동대문구청 간의 법적 분쟁이 끝내 대법원까지 가게 됐다. 1,2심 모두 승소한 다일공동체 측은 지리한 법정 다툼을 끝내고 대화와 상생으로 해법을 찾자는 입장이나 동대문구청 측이 끝까지 법의 판단을 구하겠다고 나서 원만한 합의 도출이 어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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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비핵화 빠진 韓·中 정상회담, ‘속빈 강정’
기독일보,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5일 중국을 국빈 방문해 시진핑 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지난해 11월 경주 APEC 한중 정상회담 이후 3개월 만에 성사된 만남으로 ‘사드’ 사태 이후 10년 가까이 얼어붙은 양국 관계에 해빙무드가 조성됐다는 희망 섞인 기대와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는 냉정한 평가가 교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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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신앙은 중립이 아니라 불순종이다
기독일보,오늘 한국 사회는 단순한 정치적 갈등을 넘어 세계관의 충돌 한가운데에 서 있다. 교회가 이 현실 앞에서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신앙의 문제다. 특히 하나님을 부정하거나 주변화하는 사상이 사회 전반의 가치 기준이 되려 할 때, 교회의 침묵은 중립이 아니라 불순종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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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별(거룩)과 가치 우선순위(2)
기독일보,“성경의 시작인 창세기 창조 기사(창 1:1-2:3)를 '분별'과 '가치 우선순위'의 관점에서 세밀하게 강해해 드리겠습니다. 창조는 단순한 물질의 생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분별력을 통해 혼돈에 가치 우선순위를 부여하는 과정입니다. 창조의 첫 단계는 언제나 '나누심(Separation)'입니다. 이는 조직신학적으로 하나님의 '거룩(Kadosh: 구별됨)'이 가시화되는 과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