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미 의회 ‘북한인권법’ 재승인에 거는 기대
미국 상원에서 ‘북한인권법’ 재승인을 위한 법안이 재 발의됐다. 2022년 만료된 지 3년 만이다. 3년 전 당시 상원의원이던 마코 루비오 현 국무장관이 법안 발의를 주도했으나 상원 가결 실패로 답보 상태였던 북한인권법안의 재승인 여부가 주목되는 이유다.
미국 상원에서 ‘북한인권법’ 재승인을 위한 법안이 재 발의됐다. 2022년 만료된 지 3년 만이다. 3년 전 당시 상원의원이던 마코 루비오 현 국무장관이 법안 발의를 주도했으나 상원 가결 실패로 답보 상태였던 북한인권법안의 재승인 여부가 주목되는 이유다.
“그 중의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 22:35-40).
우리 인생에는 누구에게나 흔들리는 날이 찾아옵니다. 흔들림 없이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젊을 때도 흔들리지만, 나이가 들수록 더 자주 흔들리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몸이 예전 같지 않아 흔들립니다. 기억력이 흔들립니다. 관계가 흔들립니다. 건강이 흔들립니다. 익숙했던 세상이 낯설어지면서 마음도 흔들립니다.
이석연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원회 위원장이 검사의 ‘보완수사권’ 폐지에 반대하는 입장을 밝혔다. 헌법에 위배될 소지가 있으므로 이 권한을 어떤 형태로든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국교회언론회도 검찰의 ‘보완수사권’을 완전히 폐지하는 건 “개혁이 아니라, 권력 통제의 마지노선을 허무는 공백 만들기”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의 국회 탄핵 청원이 31만 명을 넘어섰다. 방첩사 개편과 사관학교 통폐합 등 무리한 국방개혁 추진에 이어 최근 방위병 복무 당시 탈영 의혹까지 제기되며 국민적 불신이 더욱 가중된 탓이다. 안 장관에 대한 불신은 최근 김영수 청렴사회를위한공익신고센터장이 기자회견을 열어 안 장관이 1984년 방위병 복무 중 약 7개월간 무단 군무 이탈을 했다고 폭로한 데서 비롯됐다.
오마이뉴스가 지난 3일 서부원 교사(광주 살레시오고)의 기고문 “뒤틀린 학생인권조례... ‘인권 보장하려다 인성 그르친 셈이죠’”를 실었다.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주도한 건 민주당 계열의 정치인 혹은 교육감들이었고 오마이뉴스는 이를 지지해왔는데, ‘지금이라도 반성하는 건가’ 하여 잠시 기뻤다. 그런데 기고문 내용과 작성자(서부원 교사)의 이력을 보니 안타까운 마음이 더 크게 휩싸였다.
북한 체제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시각적 상징물은 단연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이다. 수만 명의 참가자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이 화려한 스펙터클은 대내외적인 체제 결속의 핵심 기제로 기능해 왔다. 그러나 이 거대한 공연의 이면에는 체제가 요구하는 완벽한 인간 기계화와 철저한 기만전술이 숨겨져 있다.
경상남도교육청이 지난 7일 각급 학교에 보낸 ‘다양한 가족 형태 존중을 위한 고정관념 용어 개선 안내’ 공문이 ‘젠더 평등’을 부추긴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교육청 측은 전교조와의 정책적 합의에 따라 ‘학부모’, ‘엄마·아빠’, ‘부모’ 대신 ‘보호자’, ‘보호자1·보호자2’ 등으로 용어상 표현을 개선했다는 설명인데 ‘성 평등’ 가치관을 심으려는 의도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한국기독교공공정책협의회가 고교 야구시합 도중 상대팀을 향해 역사 왜곡과 조롱을 했다는 이유로 징계 처분을 받은 배제고 야구선수들의 징계 해제를 요청했다. 해당 징계 처분을 철회하고 공정하고 객관적인 기준의 재심의를 요구하는 국회 국민동의청원도 잇따르고 있다.
오늘의 교회학교는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영상은 더 선명해졌고, 무대는 더 화려해졌으며, 프로그램은 더 재미있어졌다. 아이들의 눈을 사로잡기 위한 콘텐츠는 넘쳐난다. 그러나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아이들의 눈은 붙잡았는데, 과연 마음도 붙잡았는가?” 눈은 순간을 기억하지만, 마음은 평생을 기억한다. 재미있는 게임은 며칠이면 잊혀지지만, 한 교사의 진심 어린 눈빛과 따뜻한 격려는 평생의 신앙이 되기도 한다.
대한민국은 지금 '메가'와 '초격차'를 말한다. 초대형 투자, 초거대 기업, 인공지능, 반도체, 바이오… 모두가 더 크게, 더 빨리, 더 멀리 나아가야 한다고 외친다. 침체된 경제를 다시 일으켜 세우려는 국민의 기대도 그만큼 커지고 있다. 그러나 역사는 우리에게 한 가지 진실을 반복해서 가르쳐 준다. 성공은 규모가 아니라 방향에서 결정된다. 속도가 빠를수록 방향은 더욱 중요하다. 지난 5월, 카톨릭 교황 레오 14세는 인공지능 시대를 위한 첫 회칙『Magnifica Humanitas(위대한 인간성)를 발표했다. 그는 "인류는 새로운 바벨탑을 세울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과 사람이 함께 거하는 도시를 세울 것인가의 갈림길에 서 있다"고 선언했다. 이어 "인공지능은 소수의 권력과 이익을 위해 존재해서는 안 되며, 언제나 인간의 존엄과 공동선을 섬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술의 발전보다 인간의 가치가 먼저라는 선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