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북한자유주간’에 쏠린 전 세계의 이목
이번 주일에 미국 워싱톤 D.C.에서 개막될 ‘북한자유주간(North Korea Freedom Week)’에 전 세계 인권단체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북한 주민의 인권 증진과 자유를 위한 국제 연대 행사로 매년 미국에서 개최돼 온 ‘북한자유주간’의 올해 일정은 26일 주일부터 5월 2일까지 로, 북한 인권에 대한 전 세계의 관심을 환기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주일에 미국 워싱톤 D.C.에서 개막될 ‘북한자유주간(North Korea Freedom Week)’에 전 세계 인권단체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북한 주민의 인권 증진과 자유를 위한 국제 연대 행사로 매년 미국에서 개최돼 온 ‘북한자유주간’의 올해 일정은 26일 주일부터 5월 2일까지 로, 북한 인권에 대한 전 세계의 관심을 환기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깊게 파이고 무너진 산등성이 길을 따라 오른다. 총회로 모일 산정상의 회당이 저 멀리 보인다. 굵은 땀방울을 식히듯 산들바람이 불어와, 사람들을 산 위로 이끌고 있다. 진료소를 열고 바깥을 바라보는 순간, 한 노인이 나뭇가지를 깎아 만든 지팡이에 의지한 채 차에서 내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칠십이 넘은 그는 뇌졸중으로 몸의 균형을 잃었고, 언어를 전혀 형성하지 못해 어떤 말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에큐메니칼 교회관은 다음 몇 가지의 질문을 제기하면서 교회 이해를 정립한다. 첫째, “‘교회’로부터 시작해서 ‘교회가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생각하기 전에 세계에 대한 연구로부터 시작해서 세계의 요청 항목에 따라 무언가 대책을 강구할 수는 없을 것인가?” 라는 것이다. 둘째, “우리의 현재 교회를 어떻게 갱신해서 그들의 오늘의 세계에서 감당해야 하는 선교적 과제를 제대로 이행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한국교회가 이단으로 분류한 이들이 해외에서 포교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갖가지 피해가 발생하고 있어 선교지와 현지인 보호 차원의 대책이 요망된다. 이들의 포교 범위가 아시아를 넘어 북미, 유럽 등지로 퍼져나가면서 현지 교회와 사회에 끼치는 혼란과 문제 또한 더는 내버려 둘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지적이 나온다.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이 최근 미군의 대이란 군사작전 ‘장대한 분노’가 목표를 달성하고 종료됐다면서 “지금 우리는 ‘프리덤 작전’ 중”이라고 했다. 그런데 곧이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호르무즈 해협의 상선 항로 확보를 위한 ‘프리덤 작전’의 잠정 중단을 선언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법원이 담임목사 명의의 교회 부동산을 소유했다는 이유로 기초연금 수급에서 배제한 지자체의 처분을 뒤집었다. 목사 명의로 돼 있는 교회 재산이라도 개인이 아닌 교인 총유의 재산이란 걸 재확인시켜준 판결이란 점에서 의미가 있다. A목사는 재작년 3월 기초연금을 신청했다가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지급 대상이 아니란 통보를 받았다. 교회 토지와 건물, 약 13억원 규모의 부동산을 소유한 것이 기초연금 수급 기준을 초과했다는 이유에서였다. 해당 부동산이 자신의 재산이 아니라 교인들의 헌금과 교회 자금으로 마련된 교회 공동 재산이라고 해명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 5월 1일 미 하원의원이 주관한 ‘북한자유포럼’에서 탈북민들이 북한의 강제노동·인신매매·외부 정보 차단·강제북송 문제 등에 대해 증언했다. 이들은 “북한 주민을 북한의 변화와 자유 통일의 주체로 세워야 한다”고 강조하며 미국 의회와 국제사회에 북한 내 인권 침해에 대한 책임과 강제북송 중단 압박, 외부 정보 유입 지원을 호소했다.
유대에 있던 할례자들이 베드로가 무할례자들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었다고 비방했다. 이방인 고넬료와 그 일행이 예수 믿고 성령의 권능도 받았다는 사실을 함께 기뻐해야 함에도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그들과 교제했다는 것만 문제 삼았다. 유대인들이 이방인과 식사교제마저 금한 이유는 이방인들은 할례를 받지 않은 즉, 아브라함의 구원언약 안에 들지 않은 죄인으로 부정한 사람이라고 간주했기 때문이다. 선민의식에 가득 찬 유대인 신자들은 예수가 부활주 구세주인 것은 믿었으나 아직은 자기 민족만의 메시아로 여겼다는 뜻이다.
성경에 관한 정의로 가장 즐겨 사용되는 구절이 있다. 딤후 3:16절이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나는 이 번역이 늘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느 날, 하나님이 갑자기 당신이 지으신 우주 만물을 바라보시다가 그 경치에 감동을 받으셔서 성경을 기록하도록 하셨다”라는 뜻으로 자꾸 생각하게 만드는 번역이기 때문이다.
가정은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주신 첫 번째 공동체이며, 가장 근본적인 삶의 터전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고 에덴동산이라는 ‘가정적 공간’에 두셨다. 그곳에서 인간은 하나님과 교제하고, 서로 사랑하며, 삶의 의미를 발견하도록 설계되었다. 그러므로 가정은 단순한 생활 공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실현되는 거룩한 자리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가정의 위기’라는 말을 너무 쉽게 접한다.
도심의 한쪽, 조용히 숨 쉬는 배다리 공원을 걷다 보면 우리는 어느 순간 ‘평화’라는 단어를 설명 없이 이해하게 된다. 유모차를 밀며 천천히 걸어가는 가족, 잔디밭 위에 돗자리를 펴고 웃음을 나누는 사람들, 손을 맞잡고 걸음을 맞추는 노부부, 그리고 반려견과 함께하는 느긋한 산책. 그 모든 장면은 특별한 사건이 아닌데도 깊은 울림을 준다. 호수 위에는 철새들이 쉼을 얻고, 정해진 시간마다 솟구치는 분수의 물줄기는 반복 속에서 오히려 안정감을 만든다. 조깅을 하는 이들의 호흡, 운동기구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표정, 그리고 한켠에서는 양말을 팔고 뻥튀기를 튀기는 소박한 생업의 풍경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이곳은 누구도 강요하지 않지만 모두가 질서를 지키는, ‘소리 없는 공동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