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북한자유주간’에 쏠린 전 세계의 이목
이번 주일에 미국 워싱톤 D.C.에서 개막될 ‘북한자유주간(North Korea Freedom Week)’에 전 세계 인권단체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북한 주민의 인권 증진과 자유를 위한 국제 연대 행사로 매년 미국에서 개최돼 온 ‘북한자유주간’의 올해 일정은 26일 주일부터 5월 2일까지 로, 북한 인권에 대한 전 세계의 관심을 환기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주일에 미국 워싱톤 D.C.에서 개막될 ‘북한자유주간(North Korea Freedom Week)’에 전 세계 인권단체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북한 주민의 인권 증진과 자유를 위한 국제 연대 행사로 매년 미국에서 개최돼 온 ‘북한자유주간’의 올해 일정은 26일 주일부터 5월 2일까지 로, 북한 인권에 대한 전 세계의 관심을 환기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6·3 지방선거에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대승, 야당인 국민의힘이 참패했다. 지방선거 역대 두 번째로 높은 61.0% 투표율을 기록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유권자들의 관심이 지대한 선거에서 이재명 정부 심판론을 내세운 야당이 도리어 심판을 당하고 말았다. 전국적인 지지도에서 여당은 4년 전 잃었던 지역을 대부분 탈환했다. 국민의힘은 격전지였던 서울만 겨우 지켰을 뿐 부산, 충청 남북, 울산 등을 여당에 내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이런 결과는 여당이 잘해서라기보다 야당이 못한 결과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6월 ‘호국보훈의 달’이다. 우리가 6월을 ‘호국보훈의 달’로 부르는 이유는 현충일(6월 6일)과 6·25 한국전쟁(6월 25일) 등 국가를 위한 희생과 헌신을 기억해야 할 주요 기념일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제1연평해전(6월 15일), 제2연평해전(6월 29일) 등 나라를 지킨(호국) 분들을 기억하고 그 공훈(보훈)에 감사해야 할 의미는 차고 넘친다.
국제연합(UN 유엔)이 파산 위기에 처했다. 세계 1,2위 경제대국인 미국과 중국이 유엔에 내야할 분담금을 제때 내지 않은 게 원인이라는 데 유엔이 벌여온 평화 유지 활동과 인도주의 임무 실천에 막대한 차질이 빚어지고 있는 게 문제다.
이재명 정부 출범 1주년을 기해 공개한 성과자료집과 이른바 ‘123대 국정과제’ 추진 실적에 ‘차별금지법’ 입법 추진 내용이 언급됐다. ‘모두의 존엄과 권리가 보장되는 인권선진국’을 국정 목표로 법제화 토대 마련 차원이란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재명 정부가 출범 1년을 맞아 펴낸 ‘국민이 만든 대전환의 길’엔 현 정부의 123대 국정 과제 중 하나인 ‘인권 선진국’을 실현하기 위한 단계가 설정됐다.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는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는 유일한 길이다. 유일한 길이라면 당연히 적극적으로는 모든 이에게 전해야 하고 소극적으로는 누구에게도 교회 문을 활짝 열어야 한다. 그런데 그 전에 해결되어야 할 과제가 하나 있었다. 사도들은 전부 유대인들이었다. 집사들도 헬라파 유대인들이었다. 요컨대 처음에 예수 믿은 신자들은 유대교에 뿌리를 둔 신앙관을 가졌다.
미국의 침례교 설교자이자 변증가인 보디 보컴(Voddie Baucham) 목사가 한 말이 의미심장하다. “The modern church is producing passionate people with empty heads who love the Jesus they don’t know very well.” 우리말로는 “현대 교회는 자신들이 잘 알지도 못하는 예수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열정은 있지만 머리는 비어 있는 사람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라는 의미이다.
며칠 전 뜻밖의 괴소문이 돌았다. “도산안창호함이 사라졌다”는 이야기였다. 태평양 한복판에서 잠적했다는 식의 확인되지 않은 말들도 흘러나왔다. 그러나 진실은 전혀 달랐다. 우리 해군의 3000톤급 잠수함 도산안창호함은 진해를 떠나 괌과 하와이를 거쳐, 한국 잠수함 역사상 처음으로 태평양을 횡단해 캐나다 빅토리아 에스퀴몰트 해군기지에 무사히 입항했다.
서방 교회와 동방 정교회, 그리고 꼽틱 교회에서, 한결같이 존경받는 사람이 있는데, 그분이 바로 콘스탄틴(Constantinus,272-337)대제다. 그가 존경받는 이유는 250년 동안 핍박하던 기독교에 자유를 주었고, 탈취했던 모든 재산을 돌려줌으로 자유를 향유하게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공화정부터 1천 년 동안 지켜왔던 종교적 관습을 단숨에 허물어 버린 놀라운 사건이었다. 더 나아가서 신전에 종사함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전국의 무수한 신전 공무원들을 해고해야 하는 시민적 저항이 큰 일이었다.
남아프리카 고산지대, 메마른 칼라하리 사막을 품고 있는 보츠와나. 이곳의 츠와나 사람들은 척박한 사막을 떠나 모여 살아가지만, 그들의 삶에는 여전히 사막의 거친 결이 남아 있다. 나는 이 땅에서 부르심의 이유를 다 알지 못한 채, 오직 순종이라는 이름으로 서 있다.
얼마 전부터 부끄러움 신학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최근 몇 개의 글로 부끄러움을 모른 채 살아온 나 자신과 부끄러움을 외면하는 한국교회를 생각했다. 교회가 부끄러움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최근 나에게 부끄러움을 가르친 글 중의 하나는 작가 박완서의 단편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이다. 이 소설이 나의 부끄러움 세포를 자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