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 복음으로 읽는 구약 선지서(22)

    복음으로 읽는 구약 선지서(22)

    기독일보,

    이사야 65:17-25는 여호와의 심판으로 절망적인 상황에 처해있던 언약 백성이 드리는 구원의 간구(63:15-64:12)에 대한 여호와의 응답을 담고 있다. 특히 새 예루살렘의 창조에 대한 여호와의 약속을 통하여 장차 그들에게 임할 놀라운 구원과 회복의 소식을 전하고 있다.

  • 성경이 말하는 인간의 한계와 하나님의 지혜

    성경이 말하는 인간의 한계와 하나님의 지혜

    기독일보,

    고린도전서 8장 2절: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바울은 사랑과 지식을 비교하면서 먼저 지식의 불완전함을 증명한다. 본 절에서의 ‘지식’(그노시스)이 ‘하나님에 관하여 아는 것’을 시사 하지만, 이 지식으로는 하나님을 알대로 알지 못하다는 것이다. 겨우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계명을 지키는 것에 불과한 정도로 아는 것뿐이다.(요일 2:4). 즉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바로 아는 것과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는다는 것과 상통하는 것이다(호 6:3). 그러나 고린도의 지식 있는 자들은 단편적인 지식만을 가짐으로 인하여 오히려 자신을 오류에 빠지게 하는 우(愚)를 범하였다. 그들은 지식을 소유하고 있었으나, 그 지식을 당면한 문제에 적용할 수 있는 '마땅한 지식' 곧 하나님과 인간과의 사랑과 덕을 세워주는 사랑을 소유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 하나님의 법과 가이사의 법(13)

    하나님의 법과 가이사의 법(13)

    기독일보,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고(마 7:15) 경고하셨다. 사도 바울도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 1:9)라는 말로 진리를 왜곡하는 자들을 강하게 비판한다. 한편 예수님은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라”고 하신다(마 7:2). 이처럼 하나님의 법인 성경은, 가르침은 분별하되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하나님께 맡기는 균형을 요구한다.

  • 탄핵 그리고 대통령 선거

    탄핵 그리고 대통령 선거

    기독일보,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 결정 이후 실망과 서운함이 많은 것은 탄핵 기각에 대한 지나친 기대감을 불러일으킨 까닭이다. 많은 시민과 변호인단이 애를 썼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의 실책을 덮을 만한 이유가 되지 못했다. 결국 재판관들을 설득하고 이해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 모세 출생의 비화

    모세 출생의 비화

    기독일보,

    애굽에서 노예 살이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생육하고 번성하여 심히 강대해지자 바로는 불안을 느꼈습니다. 전쟁이 나면 애굽의 대적과 힘을 합해 반기를 들고 도망칠까 염려했습니다. 완전 무보수 노예들이 없어지면 대규모 건축공사를 이룰 방도가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 소보다 못한 신자가 되지 말자!

    소보다 못한 신자가 되지 말자!

    기독일보,

    독일 남부 작은 시골 마을에 소 한 마리가 단연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평소 남달리 자신을 아끼던 주인이 죽자 우리를 박차고 나와 도로를 가로지르고 공동묘지의 담을 넘어 주인의 무덤을 찾아갔다는 것이다. 이 일로 일대의 교통이 마비되고 경찰이 출동하는 등 마을에는 한바탕 소란이 벌어졌고, 무덤가를 떠나지 않던 소는 사람들의 손에 이끌려 겨우 집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 십자가에 달리신 왕, 나사렛 예수(6)

    십자가에 달리신 왕, 나사렛 예수(6)

    기독일보,

    하나님의 사랑이 가장 적나라하게 나타난 역사상의 처소가 바로 골고다이다. 골고다의 사건은 역사의 정점이다. 여태까지 세계사의 방향이 거기로 향하였고, 거기로부터 세계사는 앞으로 다가오는 종말적 미래를 향하여 새롭게 펼쳐진다. 골고다의 사건이 없었다면 세계사는 무의미하다. 세계사는 단지 시간의 무한한 연속이 아니라 목적을 지닌 하나님의 경륜적 과정으로서 그 목적은 스위스 구속사 신학자 쿨만이 천명한 바같이 역사의 구속(Heil als Geschichte)이다.

  • 요한복음(97) 도마의 고백

    요한복음(97) 도마의 고백

    기독일보,

    화창한 봄날 송사리 가족이 봄소풍을 떠났다. 가족은 모두 네 명, 들뜬 마음으로 적당한 곳에 자리잡고 재밌게 놀고 있었다. 그런데, 분명 네 명의 가족이 놀고 있었는데, 놀다 보니 다섯이다. 이상해서 아빠 송사리가 “동작 그만!” 가족을 체크하기 시작한다. “나, 아빠 송사리” “당신, 엄마 송사리” “너, 늠름한 아들 송사리” “예, 저는 이쁜 딸 송사리” 그런데 송사리가 하나 더 있다. 그래서 물었다. “넌 누구니?” “저요? 전 꼽사린데요” 믿음이란 꼽사리처럼 시작한 우리의 신앙생활이 결국 하나님의 아들 딸처럼 주인공이 되는 거다.

  • 파면 정국과 우리

    파면 정국과 우리

    기독일보,

    지난 주간 우리는 대한민국 역사에 또 하나의 변곡점을 찍었다. 작년 12월 3일에 일어났던 계엄선포에 대한 최종 판결이 났다. 10년 만에 또 한 번의 대통령 파면이라는 오점을 남겼다. 이제는 법리와 국민의 여론 사이에서 장고의 고뇌 끝에 나온 헌재 재판관들의 최종 판결에 존중하고 승복하는 것이 민주주의 법치국가의 정상적인 국민의 자세라고 본다. 그동안 각자 자기주장이 옳다고 표현하는 일은 잘못된 것은 아니었지만 이제부터는 성숙한 시민으로서 대한민국 최고 법정기관 결정에 승복하고 모두가 하나 되어 나가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파면 정국을 맞아 우리가 어떤 행동을 취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숙고할 때라고 본다. 그동안 이념을 신앙화함으로서 좌우로 갈라져 행동을 해왔다면 이제라도 성숙한 자세로 돌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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