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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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도착한 미래, 우리가 마주한 질문들
기독일보,“미래는 이미 도착했다. 다만 고르게 퍼져 있지 않을 뿐이다.” 캐나다 작가 윌리엄 깁슨의 말은 우숙영 작가의 신작 《어느 날 미래가 도착했다》를 읽는 내내 떠올랐다. 이 책은 인공지능을 다룬 단순한 기술서가 아니라, 인간이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묻는 성찰의 기록이다. 작가는 ‘도래할 미래’가 아니라 ‘이미 도착한 미래’를 선언한다. 독자가 불편해지는 이유는 명확하다. 우리는 여전히 AI를 먼 이야기라 여기고, 준비되지 않았다고 믿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AI 스피커, 번역 앱, 추천 알고리즘처럼 이미 일상 곳곳에 스며든 사례를 보라. 우리는 이미 AI와 동반자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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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내리막길 한국교회가 ‘턴업’하려면
기독일보,장로교단 총회가 이번 주를 끝으로 대부분 폐회됐다. 지난주부터 이어진 장로교단 총회는 예장 합동 등 일부 교단에서 임원선거와 관련해 정회가 선포되는 등 크고 작은 진통이 뒤따랐으나 큰 탈 없이 마무리됐다. 하지만 주요 교단들이 이번 총회에서 집계한 교세 통계가 해당 교단뿐 아니라 한국교회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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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증오 덮었다
기독일보,미국 유타주의 유타 밸리 대학교에서 연설 도중 총격으로 사망한 보수 청년 활동가 찰리 커크의 추모식이 지난 21일 애리조나주 피닉스 교외 스테이트팜 스타디움에서 수십만 군중의 애도 속에서 진행됐다. 이 자리에서 커크의 아내 에리카 커크는 남편을 살해한 살인범에게 ‘용서의 메시지’ 전해 뭉클한 감동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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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인가?
기독일보,비시비아 안디옥에서의 바울의 선교활동은 큰 열매를 맺었다. 복음을 처음 접한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이방인 개종자)이 많이”(13:43) 사도들을 따랐고 “다음 안식일에도 이 말씀을 하라고”(42절) 권했다. 다음 안식일에 “온 시민이 거의 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44절)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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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신의 생명보다 소중한 영혼 구원
기독일보,1912년 4월 15일 새벽, “꿈의 유람선”이라 불리던 타이타닉호가 빙산과 충돌하여 침몰하기 시작했다. 그 안에는 스코틀랜드 출신 침례교 목사인 '존 하퍼'(John Harper, 당시 39세)도 타고 있었다. 그는 미국 시카고의 무디 교회(Moody Church)에서 부흥 집회를 인도하기 위해, 어린 딸과 함께 배에 승선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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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 커크를 추모하며
기독일보,세계 자유 사랑 운동을 이끌던 찰리 커크(Charlie Kirk)가 9월 10일, 미국 유타밸리대학교 강연 도중 저격수의 총탄에 쓰러졌다. 이 소식은 전 세계 자유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큰 충격과 슬픔을 안겼다. 찰리 커크는 미국 건국 이념에 충실하며 자유를 수호한 인물이었다. 그의 죽음은 국가적 비극으로 받아들여졌고, 국민들은 조기를 게양하며 애도에 동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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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의 샘에서 길어 올린 지혜
기독일보,저는 단어 공부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 이유는 단어 속에 깊은 뜻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제가 가슴에 품은 단어는 “수정(守靜)”입니다. 수정은 ‘지킬’ 수(守)와 ‘고요할’ 정(靜)의 합성어입니다. 수정이란 고요함을 지키는 것입니다. 마음의 평정을 지속적으로 지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혼란스럽고 흔들리는 시대 속에 살고 있습니다. 시끄러운 소음으로 가득 찬 시대 속에 살고 있습니다. 불안과 초조와 염려와 두려움이 우리를 괴롭힙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마음의 고요입니다. 마음의 고요는 마음의 평강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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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에 서서 함께 걷는 리더: 교회학교 교사의 섬김 리더십
기독일보,교회학교는 우리 아이들이 신앙을 배우고 예수님을 닮아가는 소중한 배움터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묵묵히 헌신하시는 교사들의 수고가 있다. 오늘날, 교회학교 교사에게는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아이들의 영혼을 깊이 보듬는 ‘섬김의 리더십’이 더욱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다. ‘섬김의 리더십’은 교사가 아이들보다 앞서 걸으며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곁에 서서’ 그들의 눈높이에서 함께 걸으며 손잡이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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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일 목사의 ‘남성 사역’ 소개(3)
기독일보,남성들을 진정한 예수의 제자로 만들고 그들이 또 다른 형제를 제자화 하며 각각의 개교회를 돕고자 하는 것이 남성 사역의 주된 목적이라고 본다면 교회는 남성들의 남성 사역 운동을 마다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아니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개교회의 담임 목회자가 그것을 사역 우선순위에 두지 못하는 것은 진정한 남성 사역은 ‘Long Term investment’(장기 투자)이기 때문이며 이 사역이 필요로 하는 중간 리더들의 부족, 그리고 이에 따르는 희생이 너무 크다는 우려 때문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