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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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꿈을 꾸며 살지 않는가!
기독일보,이것은 미래에 대한 계획을 의미하는 것 같다. 그런데 “꿈을 꾼다고 뭔가 되냐?”라고 그것에 대해 회의적인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사실 모든 것은 꿈꾸는 것부터 시작한다고 볼 수도 있다. ‘꿈 대로 된다’ 또는 ‘상상하는 것 만큼 된다’라는 명강사들의 강의도 종종 들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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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후손을 위해 해야 할 일
기독일보,종교개혁을 일으킨 독일은 성혁명의 폭풍에 무너진 독일의 참담한 상황을 맞고 있다. 글로벌 성혁명의 저자인 가브리엘 커비는 자신의 저서 <글로벌 성혁명 Global Sexual Revolution>에서 독일에서 진행되고 있는 성혁명 세력의 성애화 방법을 낱낱이 폭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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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100년 된 NCCK 앞에 놓인 시급한 과제
기독일보,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가 100주년을 맞았다. 100년이라는 세월 속에서 교회 일치와 사회적 약자의 인권과 민주화에 기여해 온 NCCK가 지금까지 이어온 가치를 계승 발전시키는 것 못지않게 한국교회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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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탈을 당해 8년 동안 굳게 닫힌 명덕학사의 문
기독일보,명덕학사의 전권을 위임받은 명덕학사 이사인 나는 2024년 9월 23일 서울 서부지방법원에 명덕학사(이사장, 성봉희 장로)와 기독교대한감리회 유지재단과의 각서대로 이행해 줄 것을 요청하는 소(사건 번호 24가 합 252)를 제기했다. 김명구 박사(연세대 교수, 한국선교전락연구소 부소장)의 논문 “명덕학사, 그 헌신적 발자취”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내용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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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구한다는 것은?
기독일보,“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마 6:33,34) 이 두 구절에서 뭔가 부자연스럽게 여겨지는 점이 없습니까? 혹시 두 구절의 순서를 예수님이 잘못 배치한 것 같지 않습니까? “내일 일보다 오늘 일만 염려하라. 염려는 하나님께 모두 맡긴 다음에 하나님 나라를 구하라.”는 것이 뜻의 흐름이 더 자연스럽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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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인가?
기독일보,간결한 문장을 하나를 발견했다. “함께 붙잡고 있는 인연의 끈인 줄 알았는데, 나만 놓으면 사라질 줄이었다.”/가린 이렇게 되어 있었다. ‘가린’이 가수 이름인지 잘 모르겠고, 어떤 배경에서 이런 글이 나오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사람에 관한 것이라면 ‘짝사랑’을 뜻하는 것이리라. 사업하는 일에 있어서 협력자나 동반자였다면 ‘혼자 착각했음’을 뜻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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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잔에 대한 엇갈린 평가, 오해와 해명과 합리적 비판
기독일보,이번 한국에서 개최된 로잔대회에 대한 여러 가지 평가가 있습니다. 먼저 로잔대회의 성격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로잔대회를 지지하는 이들이나 비판하는 이들 모두가 이 대회의 성격과 취지를 전혀 모르고 맹목적인 지지를 하거나, 무조건적인 비판을 가하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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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되자 바로 성전 정화작업을 한 히스기야
2. 히스기야는 다윗의 행실과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다역대하 29장 2절 “히스기야가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행실과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히스기야 왕은 다윗 왕처럼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한 길로 갔다. 유다나라 왕들을 평가하는 기준은 다윗 왕의 길을 갔느냐 가지 않았느냐에 있다. 히스기야 왕은 자기 아버지 아하스 왕이 우상 숭배의 길, 악한 길로 간 것과는 반대로 모든 행실에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한 길로 갔다.3. 히스기야 왕의 첫 번째 행적은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을 모은 것이다역대하 29장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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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따르는 한국교회 서방신학 지지
한국교회 특별히 칼빈의 후예임을 표방하는 보수적인 장로교회의 신학 정립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문서를 들라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1648)과 루이스 벌코프(Louis Berkhof, 1873~1957)의 『조직신학』일 것이다. 일반적으로 분류할 때 한국교회의 신학 정립에 결정적인 공헌을 한 두 문서 모두 서방신학의 입장에 서 있다고 볼 수 있다.박형룡 박사(1897~1978)는 루이스 벌코프의 『조직신학』을 신학교의 교재로 활용하면서 신론에 있어서 전통적인 서방 신학의 입장인 일체 즉 하나님의 본질에 대한 토론을 한 이후에 삼위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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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탕-열탕-냉탕 넘나들기
목욕탕엔 온탕 말고도 냉탕과 열탕이 있다. 온탕은 수온이 사람 체온과 비슷해서 피로를 풀기에 적당하다. 그러나 열탕은 매우 뜨거워서 들어가도 힘들고 오래 있기도 힘들다. 냉탕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온탕, 냉탕, 열탕으로 옮겨 다니다 보면 우리 몸은 ‘충격’을 겪게 된다. 우리의 신앙 생활에도 열탕, 온탕, 냉탕이 있는 것 같다. 열탕이나 온탕은 신앙생활을 하기에 좋은 환경이고, 냉탕은 신앙생활을 하기에 매우 힘든 환경을 말한다. 교회 생활이 열탕이라면 직장 생활이나 사회 생활은 냉탕, 가정 생활은 온탕에 가깝지 않을런지. 물론 가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