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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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 주간의 묵상은 이렇게
기독일보,고난 주간은 사순절 절기 내에 포함된 절기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원 사역을 이루시기 위해 예루살렘에 입성하시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까지 겪으신 고난을 생각하며 지내는 주간이다. 이러한 고난 주간이 언제부터 지켜지게 되었는지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롬 6:3-5, 고전 11:23-26의 말씀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기념하는 절기가 초대 교회 때부터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고난 주간이 전교인의 공식적인 절기로 공개적으로 지켜진 것은 A.D. 313년 콘스타티누스 대제의 신앙 자유령이 포고된 이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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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96) 부활하신 주님의 선물
기독일보,“하늘 아래 내가 받은/ 가장 커다란 선물은/ 오늘입니다. 오늘 받은 선물 가운데서도/ 가장아름다운 선물은/ 당신입니다. 당신 나지막한 목소리와/ 웃는 얼굴, 콧노래 한 구절이면/ 한 아름 바다를 안은 듯한 기쁨이겠습니다” 나태주님의 ‘선물’이란 시다. ‘선물’이라는 또 다른 시에서 ‘하루하루가 선물’이라 했던 시인은 아침에 일어나 만나는 밝은 햇살과 새소리, 맑은 바람과 푸르른 산을 선물로 여겼고, 서럽게 뱀꼬리 흔들며 사라지는 강물을 보면서도 선물로 여겼으며, 한낮의 햇살 받은 잎사귀 넓은 나무들과 길가에 깔린 이름 없는 풀꽃 하나하나도 다 선물로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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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에 달리신 왕, 나사렛 예수(5)
기독일보,살아계시는 대속의 하나님은 마치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처럼 우리 가운데 계시며, 하나님이 전능하시드라도 무능하신 하나님인 것처럼 우리 가운데 자신을 드러내신다. 십자가의 길은 영광의 길이 아니라 죽음의 길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죽음의 길을 통하여 그의 생명의 길을 여신다. 아들이 십자가의 처형으로 가는 길은 하나님이 섭리로서 정하신 길이다. 내면적으로는 간섭하시나 표면적으로 전혀 간섭하지 아니하시는 것처럼 보이는 그분만이 진정 하나님이시다. 아들 예수는 십자가에 달리시는 처형을 받음으로 죄를 벌하시는 하나님의 공의 심판을 충족시켜야 한다. 처벌을 받는 과정에서 아들은 아버지께서 주시는 진노의 잔을 마셔야 한다. “할 수 있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라는 아들의 절규하는 기도에 대하여 아버지는 응답하시지 않으신다. 아버지는 십자가 상에서 아들의 목숨이 다하도록 침묵하시고 내버려두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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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기감 내 다양한 계층에서 분출한 목소리
기독일보,감리교 원로목사들이 지난달 31일 서울 광화문 교단 본부 앞에서 교단 내 친 동성애 및 좌경화 흐름에 우려를 표하고 교단이 이를 바로잡을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앞서 감리교 소속 목회자들과 감리교신학대학 재학생들에 이어 원로목사들까지 시국 선언 대열에 합류하면서 진보 성향이 강했던 교단 내 기류에 변화의 조짐이 감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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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하나님의 동역자인가?
기독일보,모든 사역자들이 다 하나님의 동역자(同役者)는 아니며, 참과 거짓의 두 종류로 나뉩니다. 그렇다고 예수님의 비유처럼 돈을 받기 위해 의무적 형식적으로 일하는 삯군목자와 양 떼를 위해 자기 목숨까지 버리는 선한목자로 나누려는 뜻은 아닙니다. 분명히 순수한 의도를 갖고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수행하고 있는 사역자임에도 정작 하나님의 동역자가 아닐 수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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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la’와 ‘solo’의 차이
기독일보,기독교인이면 한 번쯤은 ‘sola’라는 단어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sola fide’, ‘sola scriptura’와 같은 용어 속에 나오는 라틴어이다. ‘오직’(only)이라는 의미로 아는 이들이 많아서, ‘오직 믿음’, ‘오직 성경’이란 뜻으로 사용되어 왔다. 그런데 이 ‘sola’라는 의미가 다소 오용되어 왔음을 아는 이는 드물다. ‘sola fide’라고 하면, “‘오직 믿음만’ 중요하다”라는 뜻으로 받아들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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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으로 읽는 구약 선지서(21)
기독일보,이사야 59:15b-21은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하고 있는 언약 백성을 구원하시겠다는 여호와의 계획을 담고 있다. 특히 선지자는 여호와를 자기 백성을 위해 보복 전쟁에 나서는 강한 용사로 묘사함을 통해 언약 백성의 구원이 확실할 것임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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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 보수주의(3)] 가정을 지키는 것이 나라를 지키는 것이다
기독일보,1. 사람이 한 평생을 살아가면서, 가정이 주는 축복을 누리지 못하고 사는 것 만큼, 참으로 많은 것을 놓치고 살아가는 삶은 없을 것이다. 2. 우리가 가정에서 위로를 받지 못한다면 도대체 어디서 위로를 받을 수 있을까요? 가정에서 행복을 경험하지 못한다면 도대체 이 세상 어디에서 참된 행복을 경험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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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큐메니칼 그리스도 이해의 명암(2)
기독일보,교회가 섬겨야 할 세상은 갈수록 비인간화 되어가고 있다. 특별히 가난한 자, 병든 자, 실직자, 힘없는 자들은 갈수록 더 사회의 주변으로 밀려나고 있다. 약한 자들에 대한 구조적, 영적, 물리적 폭력을 동반한 배척 (exclusion)이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 갈수록 더 심화되고 있다.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피난처, 건강 유지, 영양공급 그리고 교육 등과 같은 인간의 기본적인 필요에 대한 공급은 30년 전보다 실제적으로 더 악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로 인하여 그들의 땅에서 쫒겨 나거나 새로운 일자리를 찾는 노동자들과 농민들 그리고 토착민들의 경제적 이민이 증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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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만 오기를… 비만 기다려
기독일보,이렇게 간절히 비만 오기를 기다려 본 적이 없었다. 산불이 급속히 확산되어 갈수록 애타는 마음으로 비만 기다렸다. 금번에 동시다발로 일어난 산불이 열흘 만에 비로소 진화되었다. 그 피해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울창한 산림이 불바다로 타들어 갔다. 강 속의 바람이 부채질을 해서 불길은 한없이 커져갔다.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가 되어 산맥을 가로질러 가면서 모조리 태워버린 것 같았다. 산불이 마을 전체를 뒤덮어 한순간에 잿더미로 변한 모습은 황량했다. 무엇 하나 건질만한 것이 남아있질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