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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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은혜를 어떻게 깨닫고 누릴 수 있나요?
기독일보,하나님의 은혜를 어떻게 깨닫고 누릴 수 있나요? 하나님께서 내게 베푸신 은혜들을 헤아려보고 잊지 않으면 되나요?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찌어다”(시103:2) 또 “내가 옛날을 기억하고 주의 모든 행하신 것을 묵상하며 주의 손의 행사를 생각하고”(시143:5)의 말씀대로 따르면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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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기도] 십자가의 놀라운 신비입니다
기독일보,희생이 훌륭하다 해도 어떻게 십자가까지 지실 수 있습니까? 네 뺨을 치는 사람에게는 다른 쪽 뺨도 돌려대고, 네 겉옷을 빼앗는 사람에게는 속옷도 거절하지 말아라. 구하는 자에게 주고 가져가는 자에게 다시 달라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이 말씀을 그대로 지키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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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신학’은 경건에 집중… 계몽주의 이후 학문성 강화
물리학은 물리현상을 다루는 학문이고 생물학은 생물을 다루는 학문이다. 이렇듯 일반적으로 학문의 이름에는 그 학문의 대상이 그대로 명기되어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신학(theologia)이라고 하는 말은 어원적으로는 신에 대한 학문을 의미한다.신학은 기독교회의 언어가 아니라 이교 사회에서 사용되던 말을 빌어 사용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이방세계의 용어를 사용하는 것 자체가 흠이 될 수는 없다. 기독교회는 그런 의미에서 방어적이고 수세적으로 외부의 문화를 거부했다기보다는 적극적으로 관계를 가지고 소통하였다고 보는 것이 정당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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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조를 드렸을 때 받는 복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는 레위인에게 말하여 그에게 이르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받아 너희에게 기업으로 준 십일조를 너희가 그들에게서 받을 때에 그 십일조의 십일조를 거제로 여호와께 드릴 것이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받는 모든 것의 십일조 중에서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고 여호와께 드린 그 거제물은 제사장 아론에게로 돌리되”(민 18:25~26, 28)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렸다. 그 십일조를 레위인이 받아 관리하고 생활비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레위인도 그들에게 주어진 생활비에서 십일조를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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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신앙생활: 회개란 무엇인가?(4)
기독일보,하나님의 주권을 진정으로 깨닫게 되면 하나님에게는 그분의 뜻이 무엇이든 그분의 뜻대로 우리에게 행하실 “완전한 권리”가 있음을 우리가 인정하게 된다. 즉, 하나님께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이 무엇이든 그 뜻대로 우리에게 행하실 수 있는 절대적 권리를 인정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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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의 콤플렉스를 극복하자
기독일보,14년 만에 한·일 국교 정상화 후에 말이 많다. 여기저기 굴욕 외교라 하여 연일 피켓을 들고 고함치는 자들도 있다. 우리나라는 일본으로부터 침략당했던 콤플렉스가 있고, 일본은 한국을 지배했다는 우월감과 미국에 패전했던 콤플렉스가 공존한다. 한국인과 일본인은 성격도, 세계관도 다르고, 습관도 생활방식도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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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음악 이야기] 겟세마네 기도
기독일보,한편의 그림이 한 사람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17세기 유럽에서 가장 영향을 주었던 빛의 화가로 불리는 네덜란드 출신의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1606-1669)를 통해 20세기 기독교에 가장 혁신적인 영향을 준 네덜란드 출신인 헨리 나우웬(Henri Jozef Machiel Nouwen, 1932-1996)을 변화시킨 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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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기도]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행복
기독일보,그리스도인도 하나님은 복을 주시는 분으로 믿고 있습니다. 시편 1편에서 복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잘 알려줍니다. 여덟 가지 복도 예수님이 누가 복이 있는 사람인지 가르쳐 주신 말씀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 애통하는 사람, 온유한 사람,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 긍휼히 여기는 사람, 마음이 청결한 사람, 화평하게 하는 사람, 의를 위해 박해를 받은 사람, 예수님은 이런 사람을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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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양심적 병역 거부자’에 관대한 법원
기독일보,대법원이 여호와의 증인 신도가 사회복무요원 근무를 ‘양심적 병역 거부’의 사유라며 제기한 소송에서 병역법 위반이라고 판결했다.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이 집총·군사훈련을 시키지 않는 사회복무요원을 거부하는 건 양심에 대한 본질적 침해가 아니라는 취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