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북한자유주간’에 쏠린 전 세계의 이목
이번 주일에 미국 워싱톤 D.C.에서 개막될 ‘북한자유주간(North Korea Freedom Week)’에 전 세계 인권단체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북한 주민의 인권 증진과 자유를 위한 국제 연대 행사로 매년 미국에서 개최돼 온 ‘북한자유주간’의 올해 일정은 26일 주일부터 5월 2일까지 로, 북한 인권에 대한 전 세계의 관심을 환기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주일에 미국 워싱톤 D.C.에서 개막될 ‘북한자유주간(North Korea Freedom Week)’에 전 세계 인권단체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북한 주민의 인권 증진과 자유를 위한 국제 연대 행사로 매년 미국에서 개최돼 온 ‘북한자유주간’의 올해 일정은 26일 주일부터 5월 2일까지 로, 북한 인권에 대한 전 세계의 관심을 환기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우리는 가지 않은 새해에 어떤 일들을 만날지 어떤 위험이나 어려움이 있을지 알 수가 없습니다. 한편 기대와 설레임이 가득합니다. 만약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의 인도함을 따라 한해를 달려가면 반드시 승리하고 우리가 원하는 일들을 이루어 낼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갈 때 어떤 은혜가 있을까요?첫째로, 가장 안전하고 바른길을 가게 됩니다.본문 17절에 보면 블레셋 사람의 땅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인도하지 않으셨습니다. 가나안으로 가는 지름길인 블레셋 사람의 땅은 가까운 지름길 일지라도 돌아가는
카타콤 미술에서 구약이나 신약에 대한 그림이나 상징이 다수 나타나고 있다. 성경의 내용을 소재로 하여 자신이나 집단이 믿는 바를 그림이나 조각, 유품 혹은 낙서(graffiti)로 상징하거나 형상화하는 일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었다.이번에는 구약의 경우를 살펴보자. 구약의 내용에 대한 그림은 비교적 후기에 조성된 비아 라티나(via Latina) 카타콤에 많이 나타나는데, 아담과 하와로 상징되는 창조와 타락, 아브라함과 이삭, 이스라엘의 구원자 모세의 생애와 출애굽 사건, 다니엘의 믿음, 요나의 기적 등 구약의 주요한 사건을 묘사했
쉼표와 마침표는 모양이 비슷하고 작다. 그렇지만 차이가 있다. 쉼표와 마침표의 작은 차이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작은 차이가 큰 차이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찍어 놓으신 쉼표를 마침표로 여겨서는 안 된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쉼표를 마침표로 오해할 수 있다. 쉼표는 잠시 쉬라는 표시다. 음악에서 쉼표는 매우 중요하다. 쉼표가 없는 음악을 상상할 수 없다. 악보에 쉼표가 없다면 노래를 부를 수 없다. 우리의 삶은 인생 교향곡이라 할 수 있다. 인생 교향곡에는 반드시 쉼표가 필요하다. 쉼표는 호흡을 고르라는 것이다. 쉼
성경에는 많은 지명이 등장하는데, 본문이 소개하는 가이사랴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정말 중요한 장소가 아닐 수 없습니다. 바로 이곳에서 기독교 역사 이래 하나의 분기점이 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과연 무엇일까요?그것을 알려면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잘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죄로 말미암아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세상 모든 사람이 주님의 십자가 은혜를 통해 구원받고 영생을 얻는 바로 이것입니다(딤전 2:4; 요 6:40).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인종과 민족, 빈부격차
카타콤 그림에서 사사시대나 열왕기 시대 이스라엘의 역사에 대한 그림은 많지 않다. 심지어 다윗에 대한 것도 드물게 나타나는데, 도미틸라 카타콤에 오직 한 편, 곧 다윗이 물맷돌을 들고 있는 한 가지 그림만 있다. 죽음을 보지 않고 승천한 엘리야의 승천은 중요한 주제일 수 있다.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오직 두 편만 있는데 하나는 도미틸라 카타콤에, 다른 하나는 라티나 카타콤에 있다. 두 그림에서 마차를 탄 엘리야가 힘차게 출발하는 것으로 그려져 있고, 왼편에는 엘리사가 겉옷을 받는 모습이, 오른쪽에는 이를 구경하는 모습이 대칭적으로
예레미야가 말씀을 전하는 곳에는 서기관 바룩이 함께 있었습니다. 바룩은 오랜 세월 예레미야의 곁을 지키며 예레미야가 구두로 선포한 메시지를 기록해 문서로 남기고 때로 그 메시지를 사람들 앞에서 낭독하는 일을 수행했습니다. 예레미야서 안에서 바룩의 존재를 가장 잘 드러내는 36장부터 45장을 보면, 예레미야에게 주시고 자신이 기록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생명의 위협도 마다하지 않은 바룩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네리야의 아들 바룩이 선지자 예레미야가 자기에게 명령한대로 하여 여호와의 성전에서 책에 있는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지금 당신은 인생이라는 비행기에 올라 타 있습니다. 과연 어디에 앉아 있을까요? 이코노미? 비즈니스? 퍼스트클래스(일등석)? 이 세 가지 선택지 외에 다른 자리를 떠올리지 못했다면 아직 스스로를 탁월함과 연결하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리는 이제 학생이든, 주부이든, 사원이든, 관리자이든 상관없이 모두 조정석에 앉아야 합니다. 남이 조종하는 대로 따르면 목적지까지 안락하게 도착할 수 있는 시대는 끝났습니다. 분초 단위로 세상이 변하고 있어 직접 조종대를 쥐지 않으면 언제든 원치 않는 곳에 떠밀리듯 내릴 수 있기 때문이죠
본문은 다윗이 왕으로서 백성을 가르치는 설교적인 성격을 지닌 시입니다. 다윗은 의인과 악인을 대조하여 의인은 영원하나 악인은 일시적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4절에 보면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소원을 이루어 주신다고 선포합니다.새해가 되면 우리는 새해에 대한 꿈과 소원을 품고 우리의 소원을 하나님께 아룁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소원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에 대하여서 본문은 너무도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꿈과 소원을 이룰 수 있는지 이
할례의 어려움그러면 우리는 “아, 그까짓 할례 그냥 받아버리면 되지, 왜 그걸 안 받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의 수준에 머물러 있나?”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할례라는 것이 잘 아시다시피 오늘날의 포경수술을 말합니다. 지금이야 비교적 간단한 수술이지만 그 옛날에는 성인이 되어 포경수술을 받는다는 것은 엄청난 결단을 요구하는 심각한 일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크게 다음 세 가지입니다.첫째, 할례를 받을 때의 엄청난 고통입니다. 유대인들은 태어난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기 때문에 할례의
먼저 아셔야 할 것은 신자가 이 땅의 문제를 가지고, 그것도 자신의 것을 위해서 얼마든지 기도해도 된다는 사실입니다. 아니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라면 무엇이든 자기가 계획하여서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또 하나님의 기적 같은 은혜를 바라며 기도한다고 해서 다 신비주의 기도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