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북한자유주간’에 쏠린 전 세계의 이목
이번 주일에 미국 워싱톤 D.C.에서 개막될 ‘북한자유주간(North Korea Freedom Week)’에 전 세계 인권단체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북한 주민의 인권 증진과 자유를 위한 국제 연대 행사로 매년 미국에서 개최돼 온 ‘북한자유주간’의 올해 일정은 26일 주일부터 5월 2일까지 로, 북한 인권에 대한 전 세계의 관심을 환기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주일에 미국 워싱톤 D.C.에서 개막될 ‘북한자유주간(North Korea Freedom Week)’에 전 세계 인권단체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북한 주민의 인권 증진과 자유를 위한 국제 연대 행사로 매년 미국에서 개최돼 온 ‘북한자유주간’의 올해 일정은 26일 주일부터 5월 2일까지 로, 북한 인권에 대한 전 세계의 관심을 환기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얼마 전에 초등학생들이 미국인 독립운동가이자 선교사인 호머 헐버트 박사(1863~1949)의 훈격을 높여달라고 국가보훈처장에게 청원을 했다고 해 화제가 됐다. 화제의 주인공은 부산 동신초등학교 6학년 학생 24명으로, 이들은 ‘독립운동의 발자취’를 주제로 수업하던 중 헐버트 박사가 남긴 업적에 감명을 받아 보훈처가 독립유공자 훈격을 재 논의한다는 기사를 보고 보훈처에 편지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계속되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아동과 여성, 민간인들의 피해가 커지고 있습니다. 73년 전 이 땅에서도 무려 3년 간 참혹한 동족상잔의 6.25 전쟁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전 대표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돕고자 하는 우리 정부를 비판하면서, “신세 질 게 아무것도 없는 나라”라며 “왜 우리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말려 들어가야 하나”라는 망언을 내놓…
팀 켈러 소천 이후 많은 사람들의 애도 글들이 올라온다. 놀라운 것은 참 다양한 교파의 사람들에게서 다양한 찬사를 듣는 것이다. 팀 켈러가 자신이 속한 교단을 너머 범교회적으로 영향을 미친 이유는 그의 사역과 관련이 있다. 복음주의권 교회들은 구원에 집중하면서 사회참여에 소홀한 경향이 있는데, 팀 켈러는 복음이 반드시 사회참여와 선교로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고…
'코로나의 고난을 지나온 교회'에 대하여, 그리고 이번에 나온 묵상집인 <흔들리지 않는 나라에 뿌리내리기>의 출간에 부쳐, 몇 마디 남기고 싶다. 이 책의 목차를 살펴보면, 대부분이 공동서신이 제시하는 복음과 교회론 그리고 윤리적 비전에 관련된 주제들이다: 제 1장/ 우리가 잃어버린 새 하늘과 새 땅의 복음; 제 2장/ 성도가 성전이고, 코이노니아가 교회인 시대; 제 3장/ 이방인 중에서, 선한 행실로 소통하는 그리스도인; 제 4장/ 거짓 가르침을 분별하며, 신적 성품에 참여하는 그리스도인; 제 5장/ 세상에서, 자신을 지키는 그리스도인, 그리고 <성구색인>이 있다.
옛날에 우리나라 사람의 신분을 결정하는 요소는 혈통이었다. 왕가에서 태어나면 왕이 되고, 고관의 집에서 태어나면 고관이 된 것, 혈통이 신분을 결정한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은 다르다. 먼저 교육이 신분을 결정한다. 학벌 위주의 사회라 좋은 대학 가고, 졸업 후에 좋은 직장 다니고, 좋은 자격증 따면 신분이 달라지기 때문에 학생들은 코피 터지게 공부한다.
많은 신자들이 시편을 건성으로 읽는 경향이 있다. 그 내용들이 거의 비슷해 보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그렇긴 하지만 그럴만한 이유는 있다. 시편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공동체와 각 개인에게 간섭하여 역사하신 일들에 대한 신앙적 체험을 기록한 것인데 사람의 성정과 믿음 수준은 예나 지금이나 동일하기 때문이다. 또 신앙적 체험이란 아무래도 고난과 핍박과 대적에게서 구원 받은 것이 가장 생생하니까 그런 고백들이 시편 내용의 주류를 이룬다. 오늘날 신자도 어려움이 닥치면 시편에서 주로 그런 체험의 고백들을 찾아서 마음에 위로 받는 정도로 그친다.
우리나라에서 불신자들이 바라보는 기독교와 기독교인은 어떤 이미지일까? 아주 부정적이라는 점에 대해서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다. 그들은 ‘기독교’를 ‘개독교’, ‘목사’를 ‘먹사’로 부르면서 손가락질 해왔다. 그런데 최근 그와는 비교가 안 되는 조소와 조롱의 내용이 회자됨을 보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오늘 하루를 하나님과의 만남으로 열고, 나의 일상의 삶이 하나님의 말씀과 교제하는 삶이라면, 나에게 주시는 특별한 하나님의 말씀은 성찬과 같다. 예배에서의 성찬은 말씀의 선포를 통해 깨닫게 되는 하나님의 은혜를 더 깊게 경험하는 상징적인 예식이다. 그러므로 일상에서의 성찬은 깊은 교제의 시간이며 특별한 하나님의 말씀 하심과 깨달음이다. 그렇다면 일상에서의 성찬은 무엇인가? 우리에게 일상의 성찬은 하나님께서 무엇인가 우리에게 알려주고 싶은 ‘특별한 메시지’다.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배자로 인정하시고, 더 큰 은혜를 부어 주시려는 상징적인 계획이다. 다윗은 하나님의 사람이었지만 그가 우리의 아내 밧세바를 취하고 간음하므로 하나님의 계명을 어겼다. 그의 일생에서 이 사건은 성찬과 같다. 우리 일상에서의 성찬은 특별한 사건이다. 다윗은 이 사건을 통해 침상이 젖도록 하나님께 용서를 간구했다. 이후 다윗의 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감사에 대한 깊이가 느껴진다(시 51:1-7). 이 성찬의 사건 이후로 다윗이 이전보다 더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았음이 분명하다. 그가 썼던 시편의 약 70%는 그가 사울에게 쫓겨 다니며 광야에서 쓴 시들이다. 힘든 환경과 여정 속에 다윗이 하나님을 새롭게 경험하고 하나님을 찬양했던 증거다. 한편 엘리야의 성찬의 시간을 살펴보자. 열왕기상 18장은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바알과 아세라 신 850명과 싸운 사건이다. 이 싸움에서 엘리야는 승리했으나 이세벨의 분노로 죽음의 위협을 느껴 광야로 도망치듯 달아난다. 이곳에서 엘리야의 죽기를 간구하는 장면을 보게 된다. 바알과 아세라 신 850명을 무찌른 용맹의 선지자가 죽음을 간구하는 모습은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이다(왕상 19:4). 엘리야는 이 사건 이후에 다시 힘을 얻고 하사엘을 아람왕으로 예후를 이스라엘 왕으로 기름 부어주고, 엘리사를 후계자로 세우는 중요한 과업을 완수하게 된다. 엘리야에게 로뎀 나무는 ‘성찬’의 시간이다. 그는 이 시간을 통해 자신에게 주신 새로운 사명을 깨닫고 힘을 얻어 훌륭하게 사역을 감당하게 된다. 오늘의 성찬은 우리에게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사랑이자 관심이다. 헨리 나우웬은 우리의 고통과 삶의 어려움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사랑이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함께 지고 가겠다는 우리를 향하신 선언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이 성령 하나님의 모습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성령님께서 그리스도인들로 아름다운 사랑과 친교를 나누게 하옵소서. 또 죄를 용서받는 은총을 받게 하옵소서. 성령님은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게 하십니다. 무엇보다도 교회를 세우고 지키는 역할을 하십니다.
본문: 요한복음 8:28 십자가의 죽음을 암시하는 장면입니다. 유대인들은 주님이 정치적인 메시아이기를 기대했습니다. 기적을 행하시고 하늘나라를 전파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막강한 능력을 발휘하면서 이스라엘을 로마의 압제에서 구원해 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힘 없는 모습으로 곧 잡히실 분위기입니다. 본문을 배경으로 ‘인자가 들린 후에 알게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