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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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는 한 사람이 나라를 지킵니다”
기도는 원동력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무기들이 실제로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기도요, 성령입니다. “이에 블레셋 사람들이 굴복하여 다시는 이스라엘 지역 안에 들어오지 못하였으며 여호와의 손이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을 막으시매”(삼상 7:13)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보호해 주시는데,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에 그렇게 해주셨습니다. 한 사람 때문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사무엘이 어떤 사람이길래 이 한 사람 때문에 민족 전체를 보호해 주셨을까요? 이 말씀 전후에 나타나는 사무엘의 특징적인 모습이 있는데, 바로 기도의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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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 없이…
기독일보,살다 보니 원하든, 원치 않든 나를 미워하는 사람들이 생긴다. 우리는 원하든 원치 않든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고 산다. 어느 때엔 명백한 이유로, 어느 때엔 뚜렷한 이유도 없이. 물론,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을 수 없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기에는 참 견디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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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천 칼럼] 거둘 것 없다면, 지금부터라도 씨를 뿌려야 합니다
결국 그냥 되는 것은 없습니다. 뿌렸으니 거두는 것이고, 가꾸었으니 잘 자라는 것이고, 아꼈으니 소중한 것입니다. 가끔 거두러 나가지만, 거둘 것 없는 빈 들판을 바라보는 마음에, 휑한 바람 불 때 있습니다. 자책도 한탄도 야속도 느끼지만, 삶의 아픈 모든 후행은 그것만으로는 어리석습니다. 오히려 아팠고 쓰라렸다면, 값 치루었으니 무엇이든 건져야합니다. 거두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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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괄적 차별금지법,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下)
기독일보,성소수자 인권단체인 퀴어여성네트워크는 2017년 제1회 '퀴어여성 생활체육대회'를 열기 위해 동대문 시설관리공단으로부터 동대문체육관 대관을 허가받았다. 그러나 민원이 제기되자 공단측에서는 다른 장소를 알아보도록 협조를 구하고 체육관 천장 공사를 이유로 대관을 취소하여 결국 이 행사를 열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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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기도] 사순절이 시작되는 날
기독일보,사순절이 시작되는 날, 참회의 수요일 아침. 주님을 뵙습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 앞에 나왔사오니 저를 받아주옵소서. 옷을 찢으며 재를 뒤집어쓰는 심정으로 엎드리오니 불쌍히 여겨 주시고, 넓으신 품으로 저를 안아 주옵소서. 물이 바다를 덮음과 같이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사죄의 은총이 넘치게 하옵소서. 저는 흙에서 왔다가 흙으로 돌아갈 존재입니다. 제가 지은 죄를 돌아보면서 회개합니다. 모든 죄와 허물이 다 용서받고 기쁜 마음이 가득하게 하옵소서. 모든 사람에게서 기쁨이 사라졌다는 요엘 선지자의 외침은 언젠가 닥칠 저의 이야기입니다. 두려움과 떨림으로 주님을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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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가 고난 중에도 형통하다는 의미는?(下)
기독일보,요셉의 경우도 바울과 세부적으로는 조금 달라도 근본 흐름은 마찬가지였습니다.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라는 소명을 받고서 그에 충성하려 모든 고난을 기꺼이 감수했습니다. 반면에 요셉은 아직 청년일 때 애굽으로 노예로 팔려갔고 억울하게 옥에 갇혔습니다. 그 때까진 고향 땅으로 돌아가는 것이 유일한 소망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은 그로 애굽의 총리가 되게 하고 자기 동족을 기근에서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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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는 박규수의 사랑방에서
기독일보,1882년에 만들어졌다는 태극기의 주인을 아직 못 찾고 있다. 그동안 박영효가 일본사신으로 배를 타고 가던 중 만들어졌다는 설은 몇 년 전 이미 아니라는 것이 입증되었다. 그 다음에 거론 된 것이 역관 이응준이다. 그것 또한 입증하기 어려운 가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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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신앙생활: 예배란 무엇인가?(3)
기독일보,이사야 선지자의 메시지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사실은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는 앗수르 제국을 하나님의 권세를 위임 받은 “하나님의 대리자”로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남유다에 대한 앗수르의 공격은 남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위하여 의도된 하나님의 계획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남유다에 대한 앗수르의 공격은 여호와께서 남유다를 위해 계획하신 일을 마칠 때까지만 유효한 것이었다. 남유다를 심판하시는 일을 완료하고 나면 여호와께서는 앗수르를 심판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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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신사참배
기독일보,1938년 9월 10일 대한 예수교 장로회 제27회 총회는 신사참배(神社參拜)를 가결했다. 한국교회 역사에 가장 부끄러운 사건이었다. 일본 제국주의는 조선을 찬탈하고 무력으로 다스리려 했으나,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당시 조선인을 대하는 태도를 누그러뜨리고 문화정책을 사용했다. 그랬더니 일제에 항거하던 독립운동가도 방향을 잃었고, 지식인들도 서서히 일제의 교묘한 문화정책에 빠져서 일본화(日本化)가 시작되었다. 그중에서도 이른바 조선을 황민화(黃民化)하려는 내선일체(內鮮一體)의 정책을 가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본의 신사(神社)를 지었다. 일본이 신사참배를 조선인에게 강요한 것은 조선의 얼을 빼버리고 일본의 조상신을 섬기도록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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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여는 기도] 참된 성전을 세우게 하소서
기독일보,내용은 없으면서 겉모습만 꾸미는 외식하는 자였습니다. 예수님도 형식만 중요하게 여기는 자들을 회칠한 무덤이라고 꾸짖으셨습니다. 무덤도 페인트를 칠해 놓으면 깨끗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용이 있어야 형식이 있습니다. 형식만 있으면 빈껍데기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