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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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신앙생활: 복음이란 무엇인가?(3)
기독일보,사람들은 나면서부터 죄인으로 태어난 자신들이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 하나님의 진노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모른다. 하나님을 거스르는 우리의 타고난 죄악과 허물 때문에 나의 삶이 하나님의 저주 아래 있고, 나의 가정이 하나님의 저주 아래 있으며, 나의 나라와 민족이 하나님의 저주 아래 있음을 인정하지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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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칼럼] 커피타임
선교신문,내 안에 나를 찾고 싶을 때 나는 글을 쓴다. 마치 보물을 캐듯 내 안에 숨겨진 언어들을 찾아내서 비밀이 담겨있는 찢어진 오래된 문서처럼 단어들을 짜깁기해 나갈 때 내가 몰랐던 나의 내면, 저 깊숙한 생각을 알아가게 된다. 흐르는 음악 속에서 잠시 멍을 때리다가 그 선율에 마음이 흘러가게 한다. 내 마음엔 차분한 고요함이 찾아온다. 주님과 함께한다는 것은 그저 공기와 같이 그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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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여는 기도] 하나 되어 기도하게 하소서
기독일보,기도는 불가능을 가능하게 합니다. 기도에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합니까?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아뢰게 하옵소서.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을 오직 기도로 저의 바라는 것을 이루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평화가 저의 마음을 지켜 줄 것입니다. 현실의 문제도 해결되기 바라고 장래의 문제도 해결되기 바라며 저의 문제도 해결되고 건강문제, 경제문제, 관계문제도 해결되게 하옵소서. 두세 사람이 함께 드리는 기도의 위력이 엄청남을 알게 하옵소서. 교회가 하나 되어 기도하게 하옵소서. 교회가 하나로 뭉치게 하옵소서. 위기를 앞에 두고 두려워 흩어지지 아니하고 도리어 단결하여 하나님의 능력에 의지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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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끔찍한 영유아 살해·유기사건, 법과 제도만으론 막을 수 없다
기독일보,출생신고가 안 된 ‘미등록 아동’에 대한 끔찍한 살해‧유기 사례가 잇따라 드러나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줬다.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국내에서 태어난 영·유아 중 출생신고도 안 돼 있고 생존 여부도 알 수 없는 사례가 2236명에 달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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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로 국민들 현혹시키는 세력들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태복음 18:19-20)”. 예수님께서는 교회의 권세에 대해 가르치시면서,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라고 위엄을 보이십니다. 교회에 이런 특권을 부여하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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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본철 칼럼] 존 윔버의 빈야드운동
그 시초를 전도의 긴급성 속에 둔 ‘능력 종교’ 운동이 윔버(John Wimber)에 의해 시작되었다. 전에는 안 믿는 재즈 음악인이었던 윔버는 1962년에 크리스천이 되었다. 비록 성경 교사로서 꽤 성공적이었지만, 윔버는 1977년에 기적적 치유와 초자연적 영적 은사들의 확증을 받아들이기 전에는 자신의 경건생활에 있어서 진정한 즐거움과 능력을 경험하지 못했다. 얼마 후에 윔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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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천 칼럼] 기쁨의 기억과 인상 가지고 사는 삶
삶은 무엇을 기억하고 있느냐입니다.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것을 잊거나, 잊은 척하거나, 잊고 싶어 한다면 슬픔을 맞이합니다. 기억해야 할 일을 기억하고 지키고 소중히 여긴다면, 어느 날 슬며시 다가온 기쁨을 맞이할 것입니다. 기억도 습관, 잊는 것도 습관입니다. 기억할 것은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잊어야 할 것은 잊어버리고 또 잊기로 작정한다면, 삶은 수고는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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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재의 혜암신학칼럼] 6·25 전쟁은 한민족에게 무엇인가?
기독일보,인류 역사를 뒤돌아보면 크고 작은 전쟁이 끝없이 이어져 왔다. 전쟁 당사국들과 지휘관들과 전쟁에 동원되거나 참여한 병사들은 지금 치르는 전쟁은 불가피하고, 자유와 정의와 평등 같은 가치를 수호하기 위한 신성한 의무라고 확신한다. 그들은 민족, 국가, 자주독립, 정치 경제적 가치이념, 신앙적 진리를 수호하기 위한 정당한 전쟁, 의로운 전쟁, 거룩한 전쟁이라는 주장과 신념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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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래 칼럼] 섭리와 묵상
서기 1885년도에 미국장로교에서 파송한 언더우드 선교사와 감리교에서 파송한 아펜젤러 선교사가 복음을 전하기 위해 한국에 최초로 왔습니다. 그 후 1947년쯤부터 전국 각처에 기도원이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기도원이 한국교회 부흥에 이바지한 일도 많이 있습니다. 반면에 기도원 때문에 문제가 된 교회(교인)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성경 말씀 왜곡, 잘못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