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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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 vs 일본해’ 명칭 문제, 대한민국 정부의 책임과 대응
지역 대표자들도 적극 대응해야 당파 넘어 국가적 차원 해결 필요 정부와 민간 등 초당적 협력 문제 독도 포함 오해와 불편 야기 충분 정부와 국민 대응 전략 실행해야 미국 국무부가 ‘동해(East Sea)’가 아닌 ‘일본해(Sea of Japan)’를 공식 명칭으로 채택하게 된 것은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 결정은 단순한 지명 문제를 넘어 국제 정치, 역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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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18) 니고데모와의 만남(2) 거듭나야 하리라(2)
기독일보,‘거듭남’은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이다(3절). 그런가 하면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는 거듭남을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에 변화를 일으키셔서 은혜롭고 거룩하게 되는 것”이라며 “회심 또는 중생의 교리를 기독교의 가장 위대한 교리”라고 했다. 거듭남은 혁명 같은 것, 생명을 얻는 구원의 정론(正論)이며 ‘소속의 변화’를 의미한다. 가장 큰 은혜이자 가장 소중한 신앙적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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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교회와 안디옥 교회와 빌립보 교회의 비결”
장소: 그레이스선교교회 일시: 2023.9.10 본문: 마 1:1,21, 행 1:14, 마 21:13 예루살렘 교회는 성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 교회였고 성자 예수님의 피로 세워진 교회였고 성령님의 강림으로 세워진 교회였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교회를 바라보시고 기뻐하시면서 예루살렘 교회를 축복하셨습니다.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 2: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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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와 순교
기독일보,선교는 순교를 각오하는 길이다. 신약성서에 사용된 ‘순교’라는 헬라어는 ‘마르투스’ 인데, 원래 이 단어는 법정 용어로서 재판석에서 증언하는 ‘증인’이라는 뜻이다. 사도행전 22장 20절의 헬라어에 증인이라는 마르투로스가 증거라는 뜻으로 사용되면서 증인은 곧 순교로 복음을 증거하는 자이다. 헬라어에서 증인과 증거와 선교는 그 뜻이 일치한다. 신약성서에 선교라는 단어는 나오지 않지만, 선교를 뜻하는 구절들은 많다. 예를 들면, 마가복음에 나타난 ‘전파’(헬라어 동사로는 ‘케뤼소’이다)라는 단어가 복음이라는 단어(헬라어 명사로는 ‘유앙겔리온’이다)이다. 맥가브란은 선교를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고, 모든 종족을 그리스도 안에 나타내신 하나님께 화해시키며, 모든 민족을 신앙과 복종에로 인도하며, 복음을 전 피조물에게 전하는 일”이라고 정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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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여는 기도] 낫고 싶으냐?
기독일보,베데스다 연못 주변에 많은 사람이 모여 있습니다. 많은 환자들, 곧 눈먼 사람들과 다리 저는 사람들과 중풍병자들입니다. 그들에게 한 가닥 끊어지지 않은 희망의 끈이 있었습니다. 연못에 한 번씩 천사가 내려와 물을 움직이는데 그때 가장 먼저 연못에 들어가는 사람은 질병에서 깨끗하게 낫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이런 사람들이 베데스다 연못을 찾아왔습니다. 언제 이루어질지 모르는 기대가 그들이 붙잡은 희망의 끈입니다. 연못에 모인 사람들 모두가 물이 움직이는 것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진짜 희망의 줄이신 예수님께서 그 자리에 오셨는데도 그들은 베데스다 연못만 쳐다볼 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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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간토대지진 100주년, 역사적 진실 외면·부정한다고 지워지지 않아
기독일보,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일본 간토지방에 대지진이 닥쳐 10만여 명이 목숨을 잃는 참사가 일어났다. 그런데 우리의 뇌리에 그날을 잊을 수 없는 건 당시 사회 혼란 속에서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 ‘방화했다’는 유언비어가 퍼지면서 일본인 자경단과 경찰, 군인 등에게 살해당한 조선인이 6천여 명에 달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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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통, 누구의 탓인가?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요한복음 15:5-6)”.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우리는 주님께서 자신은 줄기이고 신자들은 가지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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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천 칼럼] 삶은 쉽지는 않고, 힘들고, 안 되고, 고통스러워도, 기쁨으로 갈 수 있습니다
바람 불지 않은 날 없습니다. 파도치지 않는 바다 없습니다. 어둠 없는 날도 없습니다. 바람 불어도, 파도쳐도, 어둠의 순간과 시간에 놓여져도, 하나님 백성은 이제껏 살아왔고 또 살아갈 것입니다. 그 삶을 이끌어가는 것은 하나님 은혜라는 별빛이고, 가슴 스치는 하나님 함께하심과 인도하심이라는 확신의 힘입니다. 하나님 바라보는 것이 감격이고, 하나님이 버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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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무엇인가요?”
기독일보,교회는 예배자들이 모인 곳입니다. 교회는 성전이나 예배당과 같은 건물이 아니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 모인 곳입니다. 교회의 헬라어인 ‘에클레시아’는 ‘부르심을 입은 사람’이란 의미입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를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입은 바울과 및 형제 소스데네는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저희와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고전 1:1-3)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교회’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 그리고 ‘각 처에서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이라 규정했습니다. 즉,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성도들의 모임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가 머리이며. 우리는 교회의 각 지체입니다.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엡 1:22-23) 우리 예배자들은 함께 모여 하나님을 예배하며 서로 교제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서로가 하나가 되어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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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과 예수님, 왜 소통이 안 됐을까
본문: 요한복음 8:47-49 주님과 유대인들의 논쟁이 격화됩니다. 유대인은 주님에게 함부로 대하기 시작합니다. 이제 눈에 뵈는 것이 없는 정도에 이르렀습니다. 그야말로 눈에 마귀가 씌인 것입니다. 드러난 대로 보면 ‘죽기 아니면 살기’ 식입니다. 여기서 물러서면 어떻게든 끝장이라는 절박함이 보입니다. 주님을 당장 체포해 처단해야 한다는 심정입니다. 전혀 소통이 되…